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223

진북면 대티마을 김해김씨 죽림재 竹林齋

진북면 대티리 790(대티1길 125)번지는 김해김씨의 재실齋室인 죽림재竹林齋가 있는 곳이다. 처음 대티마을에 이주한 분은 김우개金宇豈이고, 죽림재竹林齋를 창건한 분은 김무조金武祚라고 교남지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이후 병화로 불타 없어졌으나 후손들이 1986년 7월에 복원하여 지금에 이른다. 대문에는 세심문洗心門이라 편액 했고, 재실은 죽림재竹林齋라 이름했다. 마당의 한켠에는 연못을 만들어 경관을 중시했고 주련을 달았다. 문이 잠겨 있어 내부의 기문은 보지 못했지만 『마산문화지』에 그 내용이 있어 아래에 옮겼다. 竹林齋重建記 구진해현舊鎭海縣의 북쪽 대티大峙는 김해김씨金海金氏의 세장世庄으로 이곳에 처음 들어와 세거世居의 터를 닦으신 어른은 통훈대부通訓大夫 휘諱 우개공宇豈公이시고 통훈공通訓公의 손자에 통..

북면 월백리 의령남씨 모목재 慕睦齋

의창구 북면 월백리 447-1(백월로277번길 16-7)은 의령남씨宜寧南氏의 재실齋室인 모목재慕睦齋가 위치한 곳이다. 모목재는 임진왜란 후 경기도에서 이곳 월백리로 은둔한 둔일遯逸 남분南玢을 제향하는 곳으로 400여년이 흐른 후 1964년에 후손들이 세웠다. 대문에는 청남菁南 오제봉吳濟峰가 쓴 추열문追悅門 편액이 걸렸고 본실은 모목재慕睦齋라 했으며 5개의 기둥에는 주련이 걸려 있다. 건물 안에는 부인찬미문夫人贊美文과 모목재기慕睦齋記 및 모목재상량문慕睦齋上樑文 등이 걸려 있다. 海山 李殷春 睦於同族慕其先 일가끼리 화목하고 그 선조 생각하는 慕睦高名亘萬年 모목慕睦이라는 높은 이름 만년을 이어가리 依舊家規敦孝友 오래된 가문의 법도는 효도와 우애가 돈독하고 至今村俗襲淳全 지금까지 마을 풍속 순수하고 온전하게 이..

진전면 여양리 옥방 밀양박씨 여양재 艅陽齋

진전면 여양리 121(옥방내동길 175-12)에는 밀양박씨密陽朴氏 규정공파糾正公派 옥방玉方마을 입향조 통덕공通德公을 향사하는 여양재艅陽齋가 있다. 이곳의 위치를 위치기반 고도계는 해발 182m를 알리고 「위도35°10'46"N 경도128°23'22"E」라 표시한다. 여양재艅陽齋 담장 밖 입구에는 『박순호선생을 기리는 비』가 서있고 솟을대문에는 경모문敬慕門이라 편액 했고 5칸의 시멘트 구조물에 전통 기와집의 형태를 이룬 여양재艅陽齋는 규모가 나무 기둥을 사용하는 집보다 훨씬 크다. 각 기둥마다 주련을 달았고 내부는 잠겨 있어 볼 수 없었다. 艅陽齋原敍 齋之艅陽扁額者 盖取諸吾耕叟公詩集 處士申嶔氏序曰 暫旅于蘿井之傍 永遯乎艅山之陽之義也 公之先考通德公密陵君之第三子也 公世襲簪纓 志存揖退 肅廟癸亥 自靑州月灘掣家 南寓..

진전면 둔덕리 옥산장씨 여산재 艅山齋

진전면 여양리 448(둔덕양담길 27)에는 옥산장씨玉山張氏 옥봉처사玉峰處士 장석원張錫源을 향사하기 위해 후손이 지은 여산재艅山齋가 있다. 이곳은 구글 지도는 「위도35°11'35.8"N 경도128°23'20.3"E」라 표시한다. 대문에는 영사문永思門이라 편액 했고 본당은 여산재艅山齋라 이름했으며 기둥마다 주련을 걸었고 대청마루에는 노근용盧根容과 조용후趙鏞厚가 각각 쓴 여산재기艅山齋記가 있으며 9세손 돈규敦圭가 지은 여산재상량문艅山齋上樑文과 9세손 재규在圭가 지은 여산재운艅山齋韻도 있다. 艅山齋記 咸州治西艅航山下 有艅陽洞乃張氏之世居 而玉峰處士諱錫源公之墳庵在焉 公以旅軒門人 南坡公諱學之 玄孫早習家庭淹博經史 蔚然爲儒林之冠冕矣 當壬辰亂後翻然 有就靜之意 自仁同周覽嶺下山水竟至 於玆山之下 則林壑幽○眞隱者 考槃之處況之山..

진주 지수면 청담리 김해허씨 관란정 觀瀾亭

지수면 청담리 409(방어산로 99)에는 김해허씨金海許氏 관란觀瀾 허국주許國柱(1548~1608)선생이 의병으로 활동한 임진왜란이 끝나고 벼슬에 뜻이 없어 만년을 보내기 위해 지은 관란정觀瀾亭이 있다. 이곳의 위치를 위치기반 고도계는 해발 21m를 알리고 「위도35°15'24"N 경도128°16'28"E」라 표시한다. 이 관란정觀瀾亭은 방어산 서북쪽에 위치하며 남해고속도로와 인접하여 진주방향으로 갈 때마다 궁금했던 정자인데 함안의 강씨 재실을 찾던 중 이 정자 옆으로 가면서 찾아봤다. 이곳에서는 염창강溓滄江이라 부르는 남강南江이 관란정觀瀾亭을 받치는 절벽 단애에 꺾어져 다시 북쪽으로 물줄기를 바꾸는 곳인데 이 정자의 바로 아래쪽에 옛 염창나루터가 있다. 솟을삼문에는 여사문如斯門이라 편액 했고 본당은 관란..

진전면 근곡리 선산김씨 옥강재 玉岡齋

진전면 근곡리 210(근곡1길 142-21)에는 선산김씨善山金氏 생원공生員公 향사하는 옥강재玉岡齋가 있다. 이곳의 위치를 위치기반 고도계는 해발 18m를 알리고 「위도35°10'47"N 경도128°26'47"E」라 표시한다. 솟을삼문에는 함휘문含輝門이라 편액 했고 기둥에는 주련을 달았으며 본당은 옥강재玉岡齋라 편액하고 대청마루에는 옥강재기玉岡齋記와 옥강재상량문玉岡齋上樑文 및 근제옥강재謹題玉岡齋라는 시를 걸어 두었다. 마당의 우측에는 진사선산김공추모기적비進仕善山金公追慕紀蹟碑가 있다. 玉岡齋 柱聯 家世追慕蓮籍 棟宇新成玉岡 成器必待磨琢 待賈何妨蘊藏 光輝勿替永世 德蔭也垂無疆 惟願承承相守 玉岡齋記 鎭海之爲縣이 濱海而斗小나 然이나 間多文學之士와 科第之選而至近世에 又多하니 齋舍之營而先蹟之述者는 盖其淳古之風이 猶有所未..

진전면 고사리 원산 창원황씨 원모재 源慕齋

진전면 고사리 513-3(의산삼일로 258-9)에는 창원황씨昌原黃氏 회산부원군檜山府院君 황창黃昌을 추모하는 1997년에 건설한 원모재源慕齋가 있다. 위치기반 고도계는 해발 83m를 알리고 「위도35°09'07.9"N 경도128°22'13.0"E」이라 표시한다. 源慕齋 記文 艅航山 靈氣를 이어 받은 오방지락五坊之落 원산동元山洞은 우리 황씨黃氏의 세거지지世居之地이다. 黃氏根源의 由來를 살펴보건대 檜山이라 함은 昌原에 籍繫되어 있으나 檜山은 卽昌原의 古號이다. 始祖諱는 石奇요 號는 檜巖이시다. 高麗五祖에 出仕하시어 官至壁上三諱三重大匡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하고 推誠佐俚功臣으로 錄勳하셨다. 君號는 檜山府院君으로 封하시고 諡號는 恭僖公이시다. 有諱는 昌이요 正順大夫知平州事를 歷任하시고 贈通憲大夫刑曹參議이시다. 三傳..

진북면 정현리 김해김씨 여강재 廬岡齋

진북면 정현리 564(대현길 12-1)번지 여강재廬岡齋 앞에는 김해김씨金海金氏 절효공節孝公 김극일金克一의 후손으로 아버지 김현호金顯昊를 극진히 모신 득명得命, 득추得秋, 득해得海 삼형제의 효행을 기리는 표효각表孝閣이 있다. 여강재廬岡齋의 대문에는 편액이 없고 열쇠를 가진 분이 마을에 계시지 않아 내부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廬岡齋記 余嘗過廬山之下 求門其所謂三孝子碑閣 三孝子者故松庵金公之子也 余意 三子之孝必有其源 而恨未聞其詳也 粵三兩丙戌 公之嗣孫鍾一 謀諸族築廬岡齋 爲公歲祭齊宿之所 介吾友弦齋而李康瑄氏 屬余以揭楣之文 余辭之不獲 按其家傳 公諱顯昊字達義 駕洛王之後 節孝先生之十二世孫也 以出群之資 擩染先休 事親以ᆻ親心爲心 故父母安其孝 推以接人 以信義相與 故人皆悅服 嘗筮仕爲郞官 尋賦歸還鄕 擇廬阜深處 植松環庭 自號曰松庵..

진북면 괴정리 경주김씨 모선재 慕先齋

진북면 대티리 35-1(귀정길 19)번지는 괴정마을로 경주김씨慶州金氏 괴은槐隱 김시달金時達를 추모하는 모선재慕先齋가 있다. 구글 지도는 「위도 35°09'49.0"N 경도 128°28'28.2"E」를 표시한다. 모선재慕先齋의 솟을대문에는 일원문一源門이라 편액 했고, 본재를 모선재慕先齋라 이름하며 주련과 모선재기慕先齋記 등이 대청의 문미에 걸려 있지만 사진으로 담지는 못했다. 慕先齋記 古鎭海縣之槐亭慶州金氏世庄也 金氏之胥宇玆土者 自通訓大夫軍資監正 槐隱諱時達 肇焉余與金氏夙有雅契會銘槐隱公 斧堂之碣欽 其磊落之像 愷悌之德 挽近築五楹之齋于 椊坊爽塏地 榜以慕先 而求余以記 實之文誼 有所不容辭夫慕焉 而有齋所 以追報祖先 而不忘其所本也 此固天理 民彛之不容己焉者 而若夫祖先 啓佑變葉相承貽厥 有址則後孫 瞻慕之誠 得無永厥世而彌深切也..

진북면 정삼리 창원황씨 동포재 東圃齋

진북면 정현리 766-1(정삼길 168-24)에는 창원황씨昌原黃氏 동포東圃 황대승黃大承을 기리는 동포재東圃齋가 있다. 위치기반 고도계는 해발 110m이고 「위도 35°10'21"N 경도 128°27'44"E」를 표시한다. 동포재의 솟을대문에는 수진문守眞門이라 편액 했고 본재의 이름은 동포재東圃齋라 했으며, 기둥의 주련은 한글로 하여 읽기 쉽게 하였고 옛 동포재중건기東圃齋重建記와 상량문上樑文 외에 새로 새긴 한글 기문과 상량문이 있다. 시운은 걸려 있지 않으나 해산海山 이은춘李殷春의 책에는 시운이 있어 소개를 한다. 山高於北水長東 산은 북쪽에 높고 물은 동쪽에 길게 흐르니 應是先生百世風 이것은 당연히 선생의 백세 풍이리 大路連通巫峽衷 큰 길은 이어져 무협속으로 가까웠고 前川流下島橋中 앞 냇물 흘러서 섬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