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200

휴천면 문정리 와룡대 臥龍臺

휴천면 송문교 아래 엄천강儼川江¹⁾ 가운데 섬처럼 큰 바위가 있다. 이 바위로 인해 일부는 흙이 쌓였고 소나무가 군집해 마치 자연이 만든 정원 같은 모습이다. 무산武山 강용하姜龍夏(1840~1908)가 전체 모양이 마치 용龍이 임천의 상류를 향해 누워있는 듯하다고 해서 ‘와룡대臥龍臺’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곳 와룡대臥龍臺에는 8명의 계원 이름을 바위에 새겼는데 허윤許胤²⁾·김기식金箕植³⁾·강윤흠姜潤欽⁴⁾·강신영姜愼永⁵⁾·강재성姜在聖⁶⁾·김경식金景植⁷⁾·김영현金瑛賢⁸⁾·조병수趙秉壽⁹⁾ 이다. 【주석】 엄천강儼川江¹⁾ : 「신동국여지승람(1530년)에는 지리산 천川의 이름을 구간별로 정리해 뒀는데, 임천臨川은 마천소馬淺所에 있다. 지리산 북쪽 골물이 합쳐서 임천이 되었다. 용유담龍遊潭은 군 남쪽 40리 지점..

창원 연덕마을 정착비

창원시 의창구 봉곡동 106은 「봉곡중앙어린이공원」이란 이름으로 존재하는데 이곳 한 모퉁이에 연덕마을 원주민들의 한을 담은 정착비가 세워졌다. 이곳의 해발 높이는 13m, 좌표는 35°14'51.5"N 128°39'59"E이다. 이 장착 비갈은 고향 땅에 살면서 고향의 흔적과 삶의 터와 직업을 잃어버린 비운의 마음을 담아 2005년 연덕마을 주인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한 성금으로 세운 비갈이다. 이곳의 비갈에는 아래와 같이 쓰여 있다. 비문 아득한 세월 장복산 서기가 감돌아 맺힌 복된 터에 할아버지의 할아버님께서 일구고 가꾸어 온곳, 똥뫼마을 연덕리淵德里다. 마을의 젖줄 남천옥수南川玉水에 살찐 아이들은 밤하늘 별을 헤며 해묵은 전설을 먹고 자랐다. 반세기를 넘긴 초등학교가 있었고 우체국, 동사무소가 자리했던..

중앙부락 옛터 비갈

『중앙부락 옛터 비갈』은 2011년 2월 삼원회에서 『창원 삼원지역의 지명과 옛 모습』이란 책을 발간 한 후 2년이 지난 2013년 12월에 세운 비갈이다. 그럼에도 ‘부락部落’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식민교육의 결과이다. 이러한 것은 교육을 통한 세뇌洗腦가 한 인간의 성장은 물론이고 집단에 많은 부분 의심 없이 살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부락部落”이란 용어는 일제강점기 때 왜구가 우리 민족을 미개한 족속으로 보고 사용한 용어로 그 뜻은 “백정, 부랑인, 불치전염병보균자, 전쟁포로, 정신적으로 이상한 자(칠푼이), 조센징 등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집단 거주지를 일러 왜국 말로 부라쿠민[ぶらくみん]”이고 한자로는 部落民이라 한다. 왜구들의 나라에는 지금도 존재하며..

고산부락유허비 高山部落遺墟碑

부락部落이라는 용어는 일제강점기에 왜구들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하여 미국의 점령시기인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 행정기록에서 사용되었다가 이후 사라진 줄만 알고 있었는데, 이 용어가 2005년 1월에 창원지역의 옛 마을을 기억하자는 금석문인 기림비에 새겨두어 놀라웠다. 대체 자신들의 마을을, 마을 사람 스스로가 자신들의 기록으로 비참한 뜻을 지닌 “부락部落”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을까? 금석문에 새긴 글은 천년이 지나도 뚜렷하게 남아있다는 점에서 함부로 새기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고 신중하게 기록해야 하는 것이다. 한 번의 오류이지만 기록을 훼손하지 않으면 그것이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部落”이란 용어는 일제강점기 때 우리에게 전한 용어로 그 뜻은 “백정, 부랑인, 불치전염병보균자, 전쟁포로, 정신적으로 이상한..

영산 만년교 靈山 萬年橋

『영산만년교 靈山萬年橋』는 창녕군 영산면 동리 274에 위치하며 보물로 지정된 조선시대의 홍교虹橋(무지개다리)이다. 길이는 13.5m, 너비 3m이고 개울 양쪽의 자연 암반을 주춧돌로 삼아 홍예虹蜺라는 반원형 모양의 구조를 이룬 다리이다. 우리나라는 석빙고나 다리를 건설하는 기술로 이 공법을 이용했다. 『영산만년교 靈山萬年橋』는 정조 4년(1780)에 석공 백진기白進己가 가설했고 고종 29년(1892) 4월에 현감 신관조申觀朝가 석수 김내경金內敬을 시켜 다시 중수했다. 『영산만년교 靈山萬年橋』 서쪽 입구 홍살문紅箭門 아래에는 「만년교비萬年橋碑」가 있고 우측에는 「남천석교서南川石橋序 병명비幷銘碑」가 있다. 아래에는 이 비들의 원문과 내용을 옮겨 두고자 한다. 영산 만년교(보물 제 564호) 石橋重建記 [原..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 조은대 釣隱臺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 1054는 임천[엄천강]의 새우섬 맞은편 강江 안에 조은대釣隱臺 각자刻字가 새겨진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조은대釣隱臺라 한다. 바위의 우측면에는 ‘단계동천丹溪洞天’이라는 각자刻字도 새겨져 있다. 바위의 한곳을 ‘ㅁ’자 모양으로 다듬고 그 안에 『釣隱臺 華山姜周龍 漢溪姜周伯』이라는 글씨를 새겼다. 이곳의 좌표는 35°26'20.5"N 127°44'29.9"E이다. 조은대釣隱臺라는 바위는 천왕봉로 도로에서 18m 떨어진 곳에 있지만 절벽이라 접근하려면 안전한 곳으로 돌아서 가야 하기에 길 위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 조은대釣隱臺는 은열공殷烈公 강민첨姜民瞻의 28세손이고, 파조派祖인 진천군파晉川君派 강위상姜渭祥의 17세손 되는 분으로 조선말기朝鮮末期에 휴천면 문정마을에 살았던 ..

至愚堂 姜來運 孝子門 지우당 강래운 효자문

진주시 대곡면 광석리 42-1(진의로 1252)에는 진주강씨晉州姜氏 강래운姜來運의 효자정려각孝子旌閭閣이 있다. 이곳은 위치기반고도계가 해발 39m로 표시하고 「위도35°16'40"N 경도128°10'01"E」라 표시한다. 지우당至愚堂 강래운姜來運 효자정려각孝子旌閭閣은 대곡면사무소에서 설매리로 가는 진의로의 우측에 위치하는데 정려각에서 114m를 가면 설매삼거리가 나온다. 정려각旌閭閣은 붉은 벽돌로 나지막한 담장을 하고 작은 철문을 달았으며, 각閣의 정면에 『효자문孝子門』이라는 은초隱樵 정명수鄭命壽(1909-2001)가 쓴 현판이 걸려있다. 각閣의 내부에는 『효자처사지우당진양강공래운지려孝子處士至愚堂晉陽姜公來運之閭』라 쓴 편액에 기문記文을 적었다. 또한 7대손 강병포姜炳炰가 『지우당공정려복원사실기至愚堂公旌閭..

달성군 현풍읍 현풍곽씨 12정려각

달성군 현풍읍 지리 1347(지동길 3)에는 현풍의 제1문중(第一門中)이라는 현풍곽씨玄風郭氏의 12정려각(十二旌閭閣)이 위치한다. 이곳의 좌표는 해발 29m, 위도 35°40'00"N 경도 128°25'45"E를 가리킨다. 임진왜란 때 구국의 영웅이라고 일컫는 곽재우 장군의 산재한 유적을 찾아보다가 본관本貫에는 어떠한 흔적들이 있는지 알아보고 그의 묘소를 찾아볼 생각을 해오다가 새해 과제라 생각하며 홀연히 현풍을 다녀왔다. 마을 진입로 우측에 용흥지 수변공원이 있고 마을 입구에는 느티나무와 회화나무 노거수가 우뚝 섰는데 달성군의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 있다. 길 건너에 솔례率禮 마을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는데 요약하면 우리 마을은 현풍읍의 남쪽 끝에 있으며 대니산 밑의 으뜸가는 큰 마을이다. 1467년(세..

몰운대 다대진 동헌과 정운공 순의비 탐방

아미산 응봉봉수대에서 친구와 산책 온 그 동네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다대진성 객사”를 찾으러 가니, 네비는 몰운대 주차장으로 안내를 했다. 다른 분들에게 물으니 객사가 몰운대 오른쪽 길을 따라가면 나온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올랐더니 처음 출발지처럼 경사가 조금 있는 동헌 건물을 가기 전에 동래부사를 지낸 이춘원(李春元,1571∼1634)의 몰운대(沒雲臺) 시비가 있어 여기에 옮겨 둔다. 沒雲臺 浩蕩風濤千萬里 호탕한 바람과 파도 천만리로 이어지고 白雲天半沒孤臺 하늘가 몰운대는 흰구름에 묻혔네 扶桑曉日車輪赤 부상(扶桑)¹⁾의 새벽해는 붉은 수레바퀴처럼 常見仙人賀鶴來 언제나 신선은 학을 타고 나타나 오시네 九畹 李春元 朝鮮 宣祖 四十年 東萊府使 (구원 이춘원 조선 선조 40년 동래부사) ​【주석】 부상(..

高麗推誠致理翊戴功臣金紫興祿大夫兵部尙書兼太子太傅上柱國天水縣開國男食邑三百戶贈太子太師諡殷烈姜公遺墟碑銘 幷序

晦堂先生文集卷之三十三 / 碑銘 高麗推誠致理翊戴功臣金紫興祿大夫兵部尙書兼太子太傅上柱國天水縣開國男食邑三百戶贈太子太師諡殷烈姜公遺墟碑銘 幷序 晉陽軍治東玉峯開慶之鄕。此殷烈姜公嶽降之地也。公諱民瞻。元尹甫能子。妣愼氏。高麗光宗癸亥公生。甫成童入鄕校。講詩書禮樂。四十三登文科。顯宗庚戌。契丹入寇。進兵西京。王南遷。公與統軍趙元死守孤城。虜解圍去。壬子女眞陷淸河諸州。公督兵擊走之。及大中祥符間。中國患契丹侵凌。徵兵本國。公以副元帥大捷而還。戊午契丹將蕭遜寧。將兵大至。姜邯贊爲上元帥。公爲副。伏奇兵山谷中。又以大繩貫牛皮塞城東川。賊兵至。决塞伏發。大破之。己未與丹兵戰於盤嶺。僵尸蔽野。大獲器仗。自兵興以b149_046d來。未始有此捷之盛也。凱還。王親迎于迎波驛。結彩棚備御樂。大饗將士。金花八枝。親揷兩將之頭。宣醞以勞之。擢拜公銀靑興祿大夫鷹揚上將軍上柱國天水縣開國男食邑三百戶。明年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