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200

봉림동 퇴촌마을 옛터 비

퇴촌유허비退村遺墟碑 즉 『退村마을 옛터 碑』가 건설된 곳은 의창구 사림동 501-26번지 사림민원센터 한 모퉁이에 있다. 위치기반 고도계는 해발 29m를 기록하고 위도 35°14'31"N 경도 128°40'55"E에 위치한다. 『창원 삼원지역의 지명과 옛 모습』에 의하면 퇴촌리退村里은 『호구총수戶口總數』에 퇴촌리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상촌리上村里 상림리上林里 전부와 대봉림大鳳林 일부를 병합하였다. 퇴촌동退村洞은 1983년부터 사림동士林洞이라는 명칭의 법정동으로 바뀌었는데 창원대학교가 이곳으로 이전해 오면서 ‘퇴촌退村’이란 명칭이 퇴임한 재상이 물러나 사는 곳이란 의미가 있으므로 士(선비 사)+林(숲풀 림), 즉 선비가 숲처럼 많이 탄생하라는 의미로 바꾼 것이다. 어떤 학자는..

봉림동의 대봉림유허비

『대봉림유허비大鳳林遺墟碑』가 건설된 곳은 의창구 사림동 85-1번지 느티어린이공원의 한 모퉁이에 있다. 위치기반 고도계는 해발 29m를 기록하고 위도 35°14'46"N 경도 128°40'43"E에 위치한다. 이 유허비는 소봉림동유허비와 거의 동일한 형식을 취했고 자연석인 비신에 『유지불망비遺址不忘碑』라 새긴것만 다르다. 봉림리鳳林里에 대한 『창원 삼원지역의 지명과 옛 모습』에는 봉림리의 ‘봉림鳳林’은 구산선문의 하나였던 봉림사鳳林寺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봉림사는 봉림산鳳林山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봉림사는 봉림산에 있다. “鳳林寺在鳳林山”이라는 기록은 전통 지리서에 거의 예외 없이 등장하는 것이다. 봉림리는 『호구총수戶口總數』에서부터 오늘날까지 모든 지리서에 등장하는 이름이다. 조선 후기에는 남면..

소봉림유허비 관리 않으려면 왜 만들어

『소봉림유허비小鳳林遺墟碑』가 건설된 곳은 의창구 봉림동 502번지이다. 위치기반 고도계는 해발 28m를 기록하고 위도 35°15'10"N 경도 128°40'00"E에 위치한다. 이 유허비遺墟碑는 지대석 위에 비좌碑座를 놓고 그 위에 자연석 비신碑身에 음각으로 새긴 비갈碑碣의 모양을 하고 있다. 비좌를 대형으로 만든 것은 그곳에 마을의 유래와 역사적 기록을 적은 판을 붙여두기 위함인 것으로 파악되며 2011년 2월에 사단법인 삼원회가 발행한 『창원 삼원지역의 지명과 옛 모습』에는 45개의 유허비가 실렸는데 15기의 마을 유허비가 동일한 모양을 하고 있다. 소봉림유허비의 기록 내용은 따로 옮기지 않고 위 사진으로 대신한다. 봉림동鳳林洞의 유래를 살펴보면 봉림산鳳林山 봉림사鳳林寺가 있었기에 지명 이름이 등장했..

불모산동과 불모산동유허비

불모산동佛母山洞의 옛터 비갈이 위치한 곳은 성산구 성주동 545-1번지 일대다. 위치기반 고도계는 해발 107m를 기록하고 위도 35°11'21"N 경도 128°43'30"E이다. 비석은 비단을 만들어 그 단에 유래와 연혁을 적었고 기단상부를 연화무늬로 조각하여 아름다움을 더했으며 그 위에 받침돌을 얻어 자연석이 안정되도록 하여 자연석에 제목을 새겼다. 자연석인 비갈의 전면에는 『불모산동 옛 터』를 새기고 뒷면에는 『불모산동유허비佛母山洞遺墟碑』라는 글을 음각으로 새겼다. 불모산동은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불모산리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당시 남면 도상삼운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불모산리가 본래부터 이름이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고 불모산佛母山에서 마을 이름을 따온 것으로 보인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

삼정자 외리마을 옛터 비갈과 수월재 각석

성산구 삼정자로51번길 15(성주동 128-2)는 성주민원센터 뒤편 삼정자경로당 앞 공터이다. 이곳의 해발 높이를위치기반고도계는 76m, 좌표는 35°11'57"N 128°42'41"E를 가리킨다. 이곳에 옛 삼정자 외리마을의 흔적을 남겨 실향민들의 애환을 달래고 옛 마을의 역사적 가치와 지리적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지리적 표석이 되는 유허비遺墟碑를 건립해 세워둔 곳이다. 삼정자三丁子 외리外里마을은 창원시가 개발된 후에도 한참 동안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2012년 공단의 배후 도시로 완전히 편입되어 개발된 곳이다. 그러다 보니 늦게 유허비가 서게 되었고 위치적으로도 그 지표의 구실을 잘하게 됐다. 내가 어릴 때에는 3개의 아름드리 정자나무가 있다고 해서 삼정자三亭子라고 알고 있었다. 실재로 정자..

불모산 성주사 사적비명

성주사비석군聖住寺碑石群이 위치한 곳은 창원시 성산구 천선동 산 213-2번지로 이곳의 해발고도는 135m이고 위치기반 고도계는 「위도35°10'35"N 경도128°42'59"E」이다. 이곳에는 『부처님 진신사리탑 공덕비문』을 비롯하여 전면에 『성주사중수급사적비성금인방명기聖住寺重修及事蹟碑誠金人芳名記』와 『성주사중흥조등암대종사공덕비聖住寺中興祖藤巖大宗師功德碑』 『임춘옥유공비林春玉有功碑』 및 『자연보호비自然保護碑』 등 5기의 비석이 길을 따라 나란히 서 있다. 이 비는 뒷면에 『창원군불모산성주사사적비명병서昌原郡佛母山聖住寺事蹟碑銘 並書』가 기록되어 있고 비의 형태는 이중 대석臺石에 개석은 없고 비신만 있는 형태이다. 맨 아래 대석은 너비 91cm, 폭 61cm이고 위의 대석은 너비 46cm, 폭 40cm이며, 비..

성주사 중흥조 등암대종사 공덕비와 백당선생 글씨

성주사비석군聖住寺碑石群이 위치한 곳은 창원시 성산구 천선동 산 213-2번지로 이곳의 해발고도는 135m이고 위치기반 고도계는 「위도35°10'35"N 경도128°42'59"E」이다. 이곳에는 『부처님 진신사리탑 공덕비문』을 비롯하여 전면에 『성주사중수급사적비성금인방명기聖住寺重修及事蹟碑誠金人芳名記』와 『성주사중흥조등암대종사공덕비聖住寺中興祖藤巖大宗師功德碑』 『임춘옥유공비林春玉有功碑』 및 『자연보호비自然保護碑』 등 5기의 비석이 길을 따라 나란히 서 있다. 이 비석들 중 『성주사중흥조등암대종사공덕비聖住寺中興祖藤巖大宗師功德碑』의 글씨를 쓴 분이 비운의 독립운동가로 국가로부터 추서를 받지도 못한 백당白堂 정기헌鄭基憲선생이다. 비좌규수碑座珪首의 형태를 가진 『성주사중흥조등암대종사공덕비聖住寺中興祖藤巖大宗師功德碑』는..

성주사 곰절의 금석문-성주사부도군

성주사부도군聖住寺浮屠群 창원시 성산구 천선동 산 213-2번지의 성주사聖住寺 가는 초입의 길옆에는 돌을 다듬어 축대 놓고 계단을 만든 후 다시 축대를 쌓고 산지를 평면으로 만들고 전면이 트인 ㄷ자 형태의 담장을 하여 그 안에 부도 4기와 비 1기를 옮겨 두었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130m이고 위치기반 고도계는 「위도35°10'43"N 경도128°42'54"E」이다. 『성주사부도군聖住寺浮屠群』이라 불리는 부도들 중 2기는 부도군의 아래쪽에 있었던 용화사龍華寺라는 옛 절터에서 옮겨 온 것인데 정확히는 어느 것인지는 모르겠다. 근래에 만든 종모양의 부도에는 『정복덕행鄭福德行』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정복덕행鄭福德行』 부도의 뒤쪽에는 종모양 부도가 받침대가 없는 상태인데 이 부도는 『화봉당·경오대사화덕성花..

성주사 곰절의 금석문-홍종영마애불망비

창원시 성산구 천선동 산 213-2번지의 성주사聖住寺 가는 길옆에는 자연 거석의 일부를 비석의 형태로 다듬어 글을 새긴 마애석이 있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132m이고 위치기반 고도계는 「위도35°10'35"N 경도128°42'58"E」이다. 『성주사 나무아미타불마애비』에서 절 방향으로 약 20m쯤 위쪽 길 좌측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는 야생차나무가 조금 서식한다. 그 차나무 바로 뒤쪽은 큰 암석이 절벽을 이루고 있다. 이 암석은 시누대가 앞을 가려 암석에 새긴 글씨가 숨겨져 있었다. 옛 기억을 더듬어 이 암석을 찾고 자세히 살피니 『홍종영마애불망비洪鍾永磨崖不忘碑』라 불리는 마애비가 보였다. 차량에서 낫을 가져와 시누대를 베어내고 글씨가 잘 보이도록 했다. 이 암석에는 3기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중..

성주사 곰절의 금석문-송설당마애비

창원시 성산구 천선동 산 213-2번지의 성주사聖住寺 가는 길옆에는 자연 거석의 일부를 직사각형으로 다듬어 글을 새긴 마애석이 있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133m이고 위치기반 고도계는 「위도35°10'37"N 경도128°42'56"E」이다. 평면으로 다듬은 면의 위쪽 중앙에는 『송설당松雪堂』이라 새겨 이 마애석을 『송설당마애석松雪堂磨崖石』이라 이름 붙인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松雪堂 송설당¹⁾ – 해석 文山 和順崔氏 화순최씨 身爲女子 聖恩如天 여자의 몸이지만 성스러운 은혜 베품은 하늘 같다네 閣建七星 壽祝萬年 칠성각을 건설하니 만년이나 오랫동안 살기를 빈다오. 辛丑十月日 1901년 10월 일 【주석】 송설당¹⁾ : 송설당松雪堂(1855~1939)은 일제강점기 전 재산을 희사하여 재단법인 송설학원을 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