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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기양루(三嘉 岐陽樓)

천부인권 2025. 11. 4. 06:57

2010.1.23.삼가 기양루(三嘉 岐陽樓)

 

합천군 삼가면 금리 622-12에 위치한 기양루岐陽樓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3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건물 앞 안내판에는 이처럼 기록해 두었다.

이 누각은 동편에 관아 터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삼가현성三嘉縣城 안에 있던 관청의 부속 건물로 보인다. 조성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건물에 이순신 장군이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의 지방관공서 건물이 15세기에 많이 지어졌으므로 그 무렵에 세워졌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기양루岐陽樓라는 이름은 이 지역의 명칭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곳의 지명이 통일신라의 경덕왕景德王(742~765) 때 삼기현三岐縣에서 강양군江陽郡으로 바뀐 적이 있는데, 이 지명에서 기와 양두 글자를 따왔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방식은 조선시대 관청건물의 이름을 지을 때 흔히 사용되었다.

이 건물은 현재 합천군 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기와 누각으로 정면 3, 측면 2칸에 겹치마 팔작지붕으로 만들어졌다. 2층 마루 둘레에는 닭 벼슬 모양의 난간을 둘러 안전과 미학을 다 같이 고려하였다. 2층 마루가 넓고 사방이 트이게 만들어졌으므로 주로 연회용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함양군 안의면에는 태종 때 세워진 광풍루光風樓가 있는데 기양루岐陽樓와 형태가 매우 유사하다.

 

2010.1.23.삼가 기양루(三嘉 岐陽樓) 측면

 

월허(月虛) 전호병(全皓炳)씨는 기양루 안내문(岐陽樓案內文)을 역사적 사실과 맞도록 이렇게 고쳤으면 한다는 내용을 남겨 두었기에 아래에 옮겨 둔다.

 

이 누각(樓閣)은 삼가현청(三嘉縣廳)의 정문(正門)이자 문루(門樓)이며 외삼문(外三門)이다. 이 지역의 지명이 가주화현(加主火縣)에서 통일신라의 경덕왕(景德王)때 가수현(嘉樹縣)으로 바뀌었고, 조선(朝鮮) 태조(太祖) 3(1394)에 삼기군(三岐郡, 대병)의 속현이 되었다. 태종(太宗) 14(1414)에 삼기현과 가수현의 첫 글자를 따서 삼가현(三嘉縣)이 되었고, 세종 21(1439)에 현재의 이곳으로 현청(縣廳)이 옮겨지고, 고종 32(1895)에 삼가군(三嘉郡)으로 승격(昇格)되었다가 1914년에 일제(日帝)에 의해서 폐군(廢郡)이 되어 합천군(陜川郡)에 속()하게 되었다.

기양루에서 향청鄕廳, 고을수령의 집무실(內衙)인 가수헌(嘉樹軒)에 이르는 길 양편에는 향사당(鄕射堂), 군관청(軍官廳), 장군청(將官廳), 인리청(人吏廳), 호적소(戶籍所), 전제소(田制所), 통인청(通引廳), 사령방(使令房), 관노방(官奴房) 등이 배치되고 동편(東便)에 외동헌(外東軒)인 근민당(近民堂)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1914년에 일제에 의해서 폐군(廢郡)이 된 후에 가수헌(嘉樹軒)과 약간의 토지는 최씨 집안에 불하(拂下)되어 토지에는 큰 뽕밭이 되었으며, 일부는 면사무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현재 기양루의 이층 루()에는 헐릴 당시에 옮겨서 걸어놓은 1844(갑진, 헌종10)의 가수헌중수기(嘉樹軒重修記)1882(임오, 고종19)의 근민당중수기(近民堂重修記) 현판이 걸려있고, 가수헌(嘉樹軒) 편액(扁額)과 미수(眉叟) 허목(許穆)선생의 전서체(篆書體) 글씨로 근민당(近民堂)의 편액(扁額)도 각각 걸려있다. , 삼가읍성(三嘉邑城)의 동문(東門)인 봉양문(鳳陽門)과 서문(西門)인 기서문(岐西門)의 편액(扁額)도 기양루의 안쪽에 걸려있다.

도계문루, 폐문루청(廢門樓廳)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건물의 조성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합천군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알려져 있다.

청룡(靑龍)과 황룡(黃龍)이 대들보에 걸려있는데, 청룡은 여의주를 물지 않고 뿔이 나있고, 청색과 황색의 두 마리 원숭이가 대들보를 받치고 있는 모양이 아름다움과 재미를 더한다. 정면 3, 측면 2칸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만들어졌다. 2층 마루 둘레에는 닭 벼슬 모양의 난간을 둘러 안전과 미학을 다 같이 고려하였다.

 

2010.1.23.근민당 중수기(近民堂重修記)

 

近民堂重修記

繕修者用民力故急於夏民則必緩於繕修, 然民固可憂而毀亦不可以不修也辛巳春余莅縣聽民事於堂堂本儉庳, 歲且久, 欀欹桷敗, 凜欲崩墜, 圬堊澷漶, 渗罅殆將不庇雨風

余喟然曰 此非偃之私室也命吏所以行君之令而致之民, 而發號施政之地也旣不忍於歛民, 又不欲於費已, 則將坐視顚覆而莫之手歟越明年三月, 不謀于民, 捐若二俸以始事鄕中稍饒者亦隨力而助費焉遂刻日命工朽而涴者新以煥之, 窒而窄者疏而暢之, 鏝其壁而糊之紙, 簷牙繩正. 甍甬翬飛逾旬而條然改觀以淸和上七告落宴于鄕士友皆莫余厭而喜與余遊也酒酣有和琴而歌者曰 侯方神明, 不日堂成耋艾觴詠, 嘉人之慶余曰 否否堂固修矣, 而人綱邑勢之綴旒頹堕者, 豈盡如斯堂之修乎宴固樂矣, 而蔀簷推谷之仳離愁餓者, 豈盡如玆宴之樂乎壊其大而修其小, 憂者多而樂者小, 則鳥在其修且樂也自玆以往, 坐新堂而新其政, 敲朴化爲絃歌, 瞻新堂而新其俗, 訟閧歸於揖讓, 則古所謂絜短新民之化未必不非於是而擧一州而將同其樂矣盍相與勉旃而圖之哉咸曰

玄黓敦牂乾月上浣 知縣權仁國記

 

근민당 중수기(近民堂重修記)

수리하는 일은 백성의 힘을 쓰는 것이므로 여름에는 백성의 농사일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서둘러야 한다. 그러나 백성이 염려스러운 존재이긴 하나,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그냥 두고 수리하지 않을 수도 없다. 신사년 봄에 내가 현령으로 부임하여 근민당에서 백성들의 일을 들었다. 그 당은 본래 검소하고 낮은 집이었는데 세월이 오래되어 서까래가 기울고 들보가 썩어, 금세라도 무너질 듯하였다. 회칠은 벗겨지고 틈새로 비바람이 스며들어 거의 비바람을 막지 못할 지경이었다. 내가 탄식하며 말했다. “이것은 나 개인의 사사로운 집이 아니다. 관리가 임금의 명을 시행하여 백성에게 미치는, 곧 정령(政令)을 내리고 정사를 펼치는 곳이다.” 이미 백성에게서 세금을 더 거두는 것을 차마 못하겠고, 또 내 사비를 쓰는 것도 꺼린다면, 결국 무너지는 것을 보고도 손을 놓고 있게 될 것인가? 이듬해 3, 백성들과 의논하지 않고 내 월급 두 달 치를 내어 공사를 시작하였다. 고을의 다소 넉넉한 사람들도 각자 형편껏 비용을 보탰다. 날짜를 정해 일꾼을 시켜 썩고 더러운 것은 새것으로 단장하고, 막혀 답답한 곳은 뚫어 시원하게 하였다. 벽을 흙손질하여 바르고, 벽지를 바르고, 처마의 이빨선과 용마루를 곧게 다듬으니, 기와의 빛이 날리고 날개짓하는 듯하였다. 열흘 남짓 지나니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였다. 맑고 화창한 음력 4월 초7일에 낙성(준공)을 알리고 향중의 선비와 친구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었다. 모두 나를 괴로워하지 않고, 즐겁게 어울려 놀았다. 술이 무르익자, 거문고를 타며 노래하는 자가 있었다. “현령의 신명한 뜻으로 며칠 안 되어 당이 완성되었으니, 늙은 이들이 술잔을 들어 노래하는 것은 좋은 사람의 경사로다.” 내가 말했다. “아니다, 아니다. 당은 참으로 새로워졌으나, 사람의 도리와 고을의 기강이 무너지고 흩어진 것이 어찌 이 당처럼 다 고쳐졌겠는가? 잔치가 참으로 즐겁지만, 오두막 처마 밑에서 헤어짐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이 어찌 이 잔치처럼 모두 즐겁겠는가? 큰 것은 무너지고 작은 것만 고쳤으니, 근심이 많은데 즐거움은 적다. 그렇다면 이 즐거움 또한 진정 즐거움이라 하겠는가?” “이제부터는 새로 단장한 당에 앉아 정치를 새롭게 하고, 매질(刑杖)의 소리가 악기로 바뀌게 하며, 새 당을 바라보며 풍속을 새롭게 하여 송사와 다툼이 예와 양보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옛사람이 말한 짧은 것을 재단하듯 백성을 새롭게 하는 교화가 바로 이로부터 비롯되지 않겠는가? 온 고을이 함께 그 즐거움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함께 힘써 이 일을 도모하자.” 모두가 ,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현묵돈장(玄黙敦牂, 신해년(辛亥年)) 건월(乾月, 10) 상완(上浣)에 지현(知縣) 권인국(權仁國)이 기록하다.

 

2010.1.23. 가양루 편액

 

近民堂落成韻

堂成自有時

迨玆重葺亦云遅

色吏爭賀

傜犪收所民不知

歌鼓日長揚危席

綺羅風弱掛燈枝

佳賓不負淸和約

惠我優寘薄牒期

 

근민당낙성운(近民堂落成韻)

건물이 무너지고 다시 세워짐에 때가 있으니,

이제야 다시 고쳐 지으니 또한 늦었다 하리라.

난간에 새로운 빛이 나니 아전들은 다투어 하례하고,

부역의 장소 거두니 백성들은 그 노고를 알지 못하네.

노래와 북소리 울리는 높은 잔칫자리 날은 길고,

비단 옷자락 스치는 바람은 부드러워 등불 건 나뭇가지 흔드네.

좋은 손님들 청화월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변변찮은 내가 주관하는 이 잔치에 은혜롭게 와주었네.

 

2010.1.23.삼가 기양루(三嘉 岐陽樓)
2010.1.23.미수(眉叟) 허목(許穆)의 근민당(近民堂) 편액
2010.1.23. 가수헌(嘉樹軒) 편액
2010.1.23. 기서문(岐西門)
2010.1.23. 봉양문(鳳陽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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