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책과 기록

서범사고(西汎私稿)

천부인권 2026. 5. 30. 06:01

 

서범사고(西汎私稿)는 전북 고창군에 거주하는 발행인 홍희준(洪熙焌)이 부친 홍종호(洪鍾皓)의 글을 모아 신사범(愼思範)의 서문을 달아 1996321일 발행한 책으로 인쇄는 호남문화사가 했다. 책의 216쪽까지는 서범사고(西汎私稿)이고, 이후 166쪽은 홍종호(洪鍾皓)의 자서(自敍)가 달린 서범수록(西汎隨錄)을 싣고 홍희준(洪熙焌)의 발문을 붙여 발행했다.

책은 양장본으로 세로글씨에 순 한문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크기는 가로 19.2cm, 세로 26.3cm이며 총 382쪽이다. 이 책은 2026514일에 헌책방 훈민정음(북코아)에서 5천원에 구입해 소장하고 있다.

 

 

盖士貴得實 若無其實而徒其文而已文 雖工何貴哉 若洪友西汎殆實得力 而發爲文者也 西汎才而沈靜有縝密性 雖一字隻句必精核 而不放過與余同師學二十載 每見其思而不得 則不措苦究力索忘寢食必得 而後已是以其發於文者 寧刻毋泛寧質毋華 莫不由實得力 而流出來也 西汎初酷好西秦 及漢唐文而自期 爲古文然用心力 不肯出閒文句而曰 明清文雖有鋭芒可玩氣於體弱不可效尤 即此可見企望之高而 用功之苦也 西汎別有所思嘗精約編隨錄一局 而沐梨公世餘皆放置不留草蓋懲彌文 而不爲汗漫卷帙之爲貴也 其允照焌爲其偏 而不周約 而未完蒐輯人家文之散 出者欲爲全書計托 余玄晏曰 今家君病老神思不逮幸 吾丈在願有相也 余受而畧加一二補綴移易 而謂曰 文貴實得而不在君大人一生精力 惟在隨錄何恨乎 渙散而未廣收哉 姑書此而歸

峕乙亥南至節 居昌 愼思範 序

 

서문()

대저 선비는 실속()을 얻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만약 그 실속은 없고 다만 문장만 있을 뿐이라면, 비록 문장이 뛰어나다 한들 무엇이 귀하겠는가. 홍우(洪友) 서범(西汎)은 거의 참으로 학문에 힘을 얻어 그것이 문장으로 발현된 사람이라 하겠다.

서범은 재주가 있으면서도 침착하고 고요하며 치밀한 성품이 있어서, 비록 한 글자나 한 구절이라도 반드시 정밀하게 살피고 함부로 넘기지 않았다. 나와 함께 스승 아래에서 학문한 지 20년 동안, 매번 그가 사색하다가 얻지 못하면 곧 그만두지 않고 고심하여 탐구하고 힘써 찾느라 잠과 음식까지 잊고, 반드시 얻은 뒤에야 그만두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므로 그가 문장에 드러낸 바는 차라리 각고(刻苦)할지언정 범람하지 않았고, 차라리 질박할지언정 화려하지 않았으니, 실학(實學)에서 힘을 얻어 흘러나오지 않은 것이 없었다.

서범은 처음에 서진(西秦) 및 한·당의 문장을 매우 좋아하여 스스로 고문(古文)을 하겠다고 기약하였다. 그러나 마음과 힘을 쓰는 데 있어 한가한 문구를 만들어내려 하지 않았으며, 또 말하기를, “·청의 문장은 비록 날카롭고 번쩍이는 기운이 있어 감상할 만하나, 문체의 기운이 약하니 본받을 바는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것만 보아도 그 뜻이 얼마나 높았으며 공부의 노력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알 수 있다.

서범은 또 별도로 뜻한 바가 있어 일찍이 정요(精約)하게 수록(隨錄)한 질을 엮었는데, 목리공(沐梨公) 대의 나머지 글들은 모두 놓아두고 초고조차 남기지 않았다. 이는 번다한 문장을 경계하여 함부로 많은 책 권질을 만드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아들 윤조(允照)와 준()이 그 편협하고 두루 갖추지 못하였으며 아직 완성되지 못한 점을 위하여, 여러 집안에 흩어진 글들을 수집하여 전서(全書)를 만들고자 하면서 나 현안(玄晏)에게 부탁하며 말하였다.

지금 저희 아버님께서는 병들고 늙으셔서 정신이 예전 같지 못하십니다. 다행히 어른께서 살아 계시니 원컨대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에 나는 이를 맡아 대략 한두 곳을 보충하고 고쳐 옮긴 뒤 말하였다.

문장이란 귀한 것은 실속을 얻는 데 있지, 책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들의 부친께서 평생 기울인 정신과 힘은 오직 수록에 담겨 있으니, 어찌 흩어져 있고 널리 거두어지지 못한 것을 한탄하겠는가.” 이에 우선 이 글을 써서 돌려보낸다.

을해년 동지절에

거창에서 신사범(愼思範) ()하다.

 

 

서범수록(西汎隨錄)

西汎隨錄

序說

自堯舜聖朝之立 極道德傳至于 數千年而其間 或有與衰然相繼 而傳迨近古士尚于 文藝之末所謂道德名號而已雖曰 鉅匠不省何者 爲道德世如此道德終不與耶 造道德有法天下之人 莫不有性情亦莫不有是心 而性卽理也 情性之發也 心發此情而用此情者也 取於一身之近 則日用萬事 其理固皆吾性中之所具也 是故其所行不待他求 而自我求之心 若能用事之間順 其性情之自然而自然即良心也行其正義 則此卽率性之道也 道則於此得矣 若德則日行正義 義理日明於心中心有所得 而可依據者存此則德也 然則道德在此豈可謂難造哉 且道德非待大而得名 雖小亦可也 是故道德行于 一身則成一身之道德行于 一邦則成一邦之道德也 雖然造道德者先明乎 心性情之分而後可也 若不知心性情之分 則難知用功之方也

丙辰小春之月 洪鍾皓 自敍

 

서설(序說)

요순(堯舜) 성왕의 시대가 세워진 이래, 지극한 도덕의 가르침이 수천 년 동안 전해져 내려왔으나, 그 사이에는 혹 성하고 혹 쇠하는 일이 서로 이어져 왔다. 근고(近古)에 이르러서는 선비들이 문예(文藝)의 말단만 숭상하고, 이른바 도덕이라는 것은 이름뿐인 칭호가 되었을 뿐이다. 비록 거장(鉅匠)이라 일컬어지는 자라 하더라도 무엇이 도덕인지 깊이 살피지 못하니, 세상이 이와 같다면 도덕이 끝내 무너지지 않겠는가.

도덕을 이루는 데에는 법도가 있다. 천하 사람 가운데 성정(性情)이 없는 이가 없고, 또한 이 마음[]이 없는 이가 없다. ()은 곧 이치[]이며, ()은 성이 발현된 것이다. 마음은 이러한 정을 일으키고, 또 그 정을 쓰는 주체이다.

가까운 자기 몸에서 취해 보면, 일상 만사(萬事)의 이치가 본래 모두 내 성품 가운데 갖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그 행실은 밖에서 구할 필요 없이 자기 마음에서 구하면 된다. 만일 일을 처리하는 사이에 그 성정의 자연스러움을 따를 수 있다면, 그 자연스러움이 곧 양심(良心)이다. 그리고 그 올바른 의()를 행한다면, 이것이 곧 성품을 따르는 도(率性之道)이며, 도는 여기에서 얻어진다.

()이란 날마다 정의(正義)를 실천하여 의리가 마음속에서 날로 밝아지고, 마음 가운데 얻은 바가 있어 의지할 근거가 남아 있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덕이다. 그렇다면 도덕은 여기에 있는 것이니, 어찌 이루기 어렵다고 하겠는가.

또한 도덕은 반드시 큰일을 해야만 이름을 얻는 것이 아니다. 비록 작은 일이라도 또한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이 한 몸에서 행해지면 한 몸의 도덕이 이루어지고, 한 나라에서 행해지면 한 나라의 도덕이 이루어진다.

비록 그러하나, 도덕을 이루고자 하는 자는 먼저 마음[성품[감정[]의 구별을 밝힌 뒤에야 가능하다. 만약 심··정의 구별을 알지 못한다면 공부해 나갈 방법 또한 알기 어려울 것이다.

병진년 음력 시월(小春)의 달에

홍종호(洪鍾皓) 자서(自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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