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암집(戇庵集)』은 당암(戇庵) 강익문(姜翼文,1568~1648)의 시문을 모아 1908년 목활자본(木活字本)으로 발행한 책인데, 당암( (戇庵)의 막내 아들 경호(鏡湖) 강대연(姜大延 1606~1655)의 후손인 8세손 계려(稽黎) 강기팔(姜起八,26세)과 10세손 강봉로(姜鳳魯,28세)가 함께 한석재(寒石齋)에서 간행했는데, 한지 접장의 오침안정법(五針眼訂法)으로 엮었으며, 순 한문 세로글씨이다. 권두의 서문(序文)은 문소(聞韶,경북 의성) 김도화(金道和,1825∼1912)가 지었으며, 권말의 발(跋)은 완산(完山) 류필영(柳必永,1841~1924)이 썼다.
이 책은 헌책방 정연재에서 2026년 5월 30일 20만 원에 구입했고, 크기는 가로 20.3cm, 세로 30.7cm이며, 120쪽이다.

序
戇庵先生文集序 / 金道和
卷一
賦 : 正氣歌賦 / 姜翼文
詩 :
憎鼠, 警兒曺讀書五絶, 與姜杏亭郭忘憂堂張南坡裵藤庵尹三嘉同豋麒麟山詠古事 / 姜翼文
挽朴鉤溪裕後二首, 挽李蘆坡山立, 挽鄭縣監彥昇, 挽李䝺成善承, 挽李梅軒二首 / 姜翼文
跋 : 書曺靜谷筆語後 / 姜翼文
祭文 : 祭朴釣溪文, 祭金德灘汝仰文, 祭鄭彥昇文 / 姜翼文
行狀 : 贈主簿德灘金公行狀 / 姜翼文
墓碣銘 : 贈主簿德灘金公墓碣銘 / 姜翼文
卷二 附錄 :
世系源流, 墓碣銘 / 許穆, 家狀 / 姜斗爕, 行狀 / 張鍚英, 壽詩 / 李恒福, 壽詩 / 金尚憲, 壽詩 / 金尚容, 壽詩 / 李景奭. 壽詩 / 李廷龜, 士林為先生伸寃疏, 子大遂為先生鳴寃疏, 知舊諸贒徃復 / 李廷龜, 知舊諸贒徃復 / 金尚容, 知舊諸贒徃復 / 張維. 知舊諸贒徃復 / 金瑬, 知舊諸贒徃復 / 鄭太和, 知舊諸贒徃復 / 鄭蘊, 知舊諸贒徃復 / 俞棨, 知舊諸贒徃復 / 李敬輿, 知舊諸贒徃復 / 成以性, 知舊諸贒徃復 / 李景奭, 知舊諸贒徃復 / 李聖求, 知舊諸贒徃復 / 吳周, 知舊諸贒徃復 / 韓興一, 知舊諸贒徃復 / 崔葕, 知舊諸贒徃復 / 房元井, 知舊諸贒徃復 / 趙昌遠, 知舊諸贒徃復 / 閔光勳, 知舊諸贒徃復 / 李行遠, 知舊諸贒徃復 / 洪霱, 知舊諸贒徃復 / 金汝珏, 知舊諸贒徃復 / 李尚吉, 知舊諸贒徃復 / 朴廞, 同道會話圖, 同道會話錄, 疏儒錄, 常享文 / 張鍚贇, 後識 / 姜起八, 後識 / 姜鳳魯, 戇庵先生文集跋 / 柳必永

懿庵先生文集序
眉叟先生文正文公 以衰鉞之筆 權衡一世人物 其題懿庵先生墓穴之墓 曰懿而直質而淳 噫盡之矣 夫懿者事君之衷也 直者持身之道也 值昏朝之斁倫 而秉執不撓 則何如其懿也 斥倻鄭之誣賢 而辭氣漉晰 則何如其直也 質而無僞則著於師友之往復淳 而不漓則見 於日用之彝常 是共衆善之集 有不可勝記者 而煌煌繭婦之須實 爲千古之公案矣 昔太史氏 敍伯夷之傳 引夫子求仁得仁之語 而稱揚於萬世 其重如彼東海如 有太史氏作安知不引重 於文正之一言 而發其幽潛之光乎 鳴乎 公之世遠矣 當日巾箱所藏必多可観者 而燹灰之餘 杞宋茫然獨正氣歌一篇能保無恙 於百世之下 而詞氣激切義理謹嚴反復詠歎之間隱 然有文丞相烈烈之遺響 則此足以觀公之始終矣 且夫大聖人錦帖雲章炳如日星始 以一節如昨褒之終 以萬古瞻仰許之藏 在天府與天壤俱弊 則彼文詞之缺何足恨哉 公之後孫贊武英達等將收拾遺唾 以圖不朽而跋涉四百里問序 於不佞不佞非能言 而切有曠世之感 遂不揆而書之
戊申日南至
前 行義禁府都事
開韶 金道和 謹序
당암선생 문집서(懿庵先生¹⁾文集序)
미수선생(眉叟先生)²⁾ 문정공(文正文公)께서 곤월(袞鉞)³⁾의 붓으로 한 세상의 인물(人物)을 평(評)하는데 당암선생(懿庵先生)의 묘(墓)에 쓰기를 「성실하고도 곧고 질박하면서도 순박하다」고 했으니 아아! 이것으로 말을 다 했도다.
대체로 성실하다는 것은 임금을 섬기는 충성이요, 곧다는 것은 몸을 갖는 도리이다. 혼조(昏朝)⁴⁾의 인륜이 이그러진 때를 당하여 옳은 마음을 잡은 것이 흔들리지 않았으니 그 성실함이 어떠했던가?
야정(倻鄭)⁵⁾이 어진 이들을 무함한 것을 배척하여 말이 깨끗하고 분명했으니 그 곧은 것이 어떠했던가? 질박하고 거짓이 없었던 것은 사우(師友) 사이에 왕복한 글에 나타나 있고, 순박하여 경박하지 않았던 것은 일용(日用)의 떳떳함에 나타나 있으니 이는 그 모든 착한 일이 모인 것으로서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고, 누에치는 여인들의 칭찬에까지 빛났으니 실로 천고(千古)의 공변된 의논인 것이다.
옛날에 태사씨(太史氏)⁶⁾가 백이(伯夷)의 전기(傳記)를 지을 적에 공자(孔子)의 “어진 것을 구하여 어진 것을 얻었다.”는 말을 인용해서 만세에 드날려 그 소중하기를 저와 같이했었다.
그러나 동해(東海)에 만일 태사씨(太史氏)의 지은 글이 있었다면, 어찌 문정공(文正公)의 한 마디 말을 인용해서 깊은 데에 잠겨 있는 빛을 드날렸을 것을 알겠는가?
아아! 공(公)의 세상은 이제 멀어졌다. 당일에 상자 속에 간직되었던 것이 반드시 볼만한 것이 많았을 것인데 불에 타 남아져 아주 희미하여졌고, 홀로 정기가(正氣歌)⁷⁾ 한 편만이 능히 보존되어 백세(百世)의 아래에 탈이 없이 남아져 이를 읊어보면 되는지 못했고, 홀로 정기가(正氣歌) 한 편이 능히 보존되어 백세의 아래에 탈이 없이 사기(詞氣)가 격절(激切)하고 의리가 근엄(謹嚴)해서 거듭 읊고 탄식하는 사이에는 은연(隱然)히 문승상(文丞相)⁸⁾의 열렬(烈烈)한 남은 소리가 있으니, 이것으로 족히 공(公)의 시종(始終)을 볼 수가 있다.
또 대체로 대성인(大聖人)의 비단 서첩(書帖)과 구름 같은 글이 해와 별처럼 빛나서 처음에는 한 마디로써 어제와 같이 칭찬하고 마침내는 만고(萬古)에 우러러 존경해서 이를 하락했으나 천부(天府)⁹⁾에 간직되어 있어 하늘과 땅과 함께 모두 폐해져 있으니 저 문사(文詞)의 없어진 것을 어찌 한탄만으로 족하랴?
공의 후손 찬무(贊武)·영달(英達) 등이 장차 그 남긴 글을 수습해서 없어지지 않게 할 것을 도모하고자 사백 리를 걸어와서 못난 나에게 서문(序文)을 지으라고 한다. 여기에는 능히 말할 수가 없지만 간절히 세상에 드문 감회가 있어 드디어 힘을 헤아리지 않고 쓰는 바이다.
무신(戊申,1908) 동지(冬至) 전날에 행의금부도사(行義禁府都事) 문소(聞韶) 김도화(金道和)는 삼가 서문(序文)을 쓰다.
【주석】
당암선생(懿庵先生)¹⁾ : 조선조 선조조(宣祖朝) 때의 문신(文臣). 이름은 익문(翼文) 당암(懿庵)은 그 호(號). 본관은 진주(晉州). 익평부원군(益平府院君) 세탁(世澤)의 아들 합천(陜川) 출신 지평(持平) 문학(文學) 사간(司諫)에 이어 제용감정(濟用監正)으로 옮겼다. 계축옥사(癸丑獄事)가 일어나자 병을 핑계하여 사직, 1618년에 아들 대수(大遂)가 광해군의 미움을 사서 유배되자 난정(乱政)을 향소하다가 역시 유배되었다가 1631년에 아들 대수(大遂)의 상소로 풀려나 소향에서 만년을 보냈다.
미수선생(眉叟先生)²⁾ : 조선조 선조(宣祖)~숙종(肅宗) 때학자, 이름은 허목(許穆), 미수(眉叟)는 그의 호, 자는 문보(文甫) 또는 화보(和甫), 문관은 양천(陽川). 50세가 되도록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제자백가(諸子百家)를 연구하다가 다시 경서의 연구에 전심하여 특히 예학(禮學)에 있어서 일가를 이루었다. 지평(持平)에 초임(初任)되어 이듬해 장령(掌令)이 되고 현종(顯宗) 1년에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문제(服喪問題)로 제1차 예송(禮訟)이 일어나자 당시 집권층인 서인(西人) 송시열(宋時烈) 등이 채택한 기년설(朞年說:만 1년)을 반대하고 3년설을 주장했으나 현종이 기년설을 재확인 했기 때문에 그는 사척부사(三陟府使)로 좌천당했다가 2년 후에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숙종(肅宗)이 즉위하여 제2차 예송으로 남인이 집권하게 되자 대사헌에 특진 되어이조참판을 거쳐 우의정에 올랐다. 글씨는 특히 전서(篆書)에 능하여 동방 제1인자(東方第一人者)」라 찬사를 받았다.
곤월(袞鉞)³⁾ : 임금의 자리
혼조(昏朝)⁴⁾ : 광해조를 가리킴
야정(倻鄭)⁵⁾ : 정인홍(鄭仁弘)이 합천 가야산 밑에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함.
태사씨(太史氏)⁶⁾ : 역사를 쓰는 사람. 여기에서는 사기를 쓴 사마천(司馬遷)을 말함.
정기가(正氣歌)⁷⁾ : 원래 송나라 사람 문천상(文天祥)이 원나라에 의해 옥중(獄中)에 있을 때 지은 오언고시(五言古詩).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뜻을 간절히 읊었다. 당암(戇庵)의 글에도 정기가(正氣歌) 있으므로 이 말을 썼다.
문승상(文丞相)⁸⁾ : 송나라 문천상(文天祥)을 말함
천부(天府)⁹⁾ : 천자가 쓰는 물품을 두는 창고



懿庵先生文集跋
懿庵先生姜公當龍蛇艱危之世, 雪涕仗義, 與松庵忘憂諸義將伸敵愾之志, 値昏朝斁倫之際, 秉直守正, 與漢陰桐溪諸大老陳全恩之義, 發之爲燀爀可驗蘊之爲崇深 而滽作誣 賢積忤弘瞻有九年犴狴之厄, 又是尊師衛道之大樹立也。當時名公鉅卿, 一辭推重立朝章奏。僚寀往復宜, 其見溢箱篋而不幸世久散逸, 便同杞宋之無徵。後孫渭東性鳳等始乃掇拾裒稡, 僅得詩文十五篇, 附以狀碣及諸賢奇贈爲一冊, 所謂存十一於千百也。北走四百里齎示, 必求曰先祖大節, 有可紀而文字多不傳誠不肖無窮之恨。懼其逾久愈失, 將付之梓, 願有以識之也。必求旣卒業而復之曰 遺集未完,尙論者致欠考據誠若可悢 然上之雲漢。辰章降華表之褒諭下之斯文宗匠岳金石之信筆 斯可以輝映百世。晚生蔑識何說之敢贅哉。雖然讀是集而興感實有焉 正氣賦一篇 雖是臨場應製之作 而文丞柏貞忠血忱模鳳。殆盡後來南漢之圍 命子赴義和議之成 痛哭却食 寔此賦之所蘊蓄也 顧今時危勢棘 正氣全消志仁人 當有賢此而隕涕者 是可以裨世教也。噫!
戊申日南至 完山柳必永謹跋
의암선생문집발(懿庵先生文集跋)
당암선생(懿庵先生) 강공(姜公)이 임진(壬辰) 계사(癸巳)의 어렵고 위태로운 세상을 당해서는 눈물을 뿌리고 의병(義兵)을 일으켜, 송암(松庵)·망우당(忘憂堂) 등 여러 의병장(義兵將)과 함께 적개(敵愾)의 뜻을 폈다. 또 혼조(昏朝)의 인륜을 어기는 때를 당해서는 곧은 것을 잡고 바른 것을 지켜, 한음(漢陰)·동계(桐溪) 등 여러 나이 먹은 어진이들과 같이 은혜를 온전히 하는 의리를 말하여 빛났으니, 이는 가히 마음속에 간직한 것이 높고 깊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어진이를 무함한 것을 통렬히 배척하여 인홍(仁弘)과 이첨(爾瞻)에게 미움을 받은 것이 쌓여서 9년 동안의 옥에 갇히는 액운이 있었으니, 이는 또 스승을 높이고 올바른 도를 보호하는 큰 수립(樹立)이었다.
이에 당시의 명공(名公)과 높은 경상(卿相)이 한마디로 추앙하여 소중히 여겼다. 조정에 있어서의 장주(章奏)와 오우(僚友) 사이에 왕복한 글이 마땅히 상자에 넘칠 것인데, 불행히 세상이 오래되자 흩어져 없어져서 전해 찾을 길이 없다.
이에 후손 위동(渭東)·성봉(性鳳) 등이 비로소 주어 모으고 거두어서 겨우 시문(詩文) 십오편(十五篇)을 얻고, 행장(行狀)과 묘갈(墓碣), 여러 어진이들이 준 글을 모아서 한 권의 책을 만들었으니, 이른바 천백에서 10분의 1이 있는 셈이다. 북쪽으로 4백리를 달려와서 보여주는바, 반드시 말하기를 선조(先祖)의 큰 절개가 기록할 만한 것이 있을 것이나 문자(文字)가 많이 전하지 못했으니, 이는 진실로 불초(不肖)의 무궁한 한스러움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시간이 더 흘러 (기록이) 아주 사라져 버릴까 염려되어, 머지않아 책으로 찍어내고자 하면서 그간의 사정을 기록해 두고자 하는 바이다. 이미 일이 끝나자 와서 말하기를, 유집(遺集)이 완전하지 못하니 옛 사람의 언행(言行)을 말하는 자가 상고할 길이 없어 한스럽다고 한다.
그러나 위의 하늘에서 임금의 글이 화려한 포장(褒獎)을 내리고, 아래로 사문(斯文)의 종장(宗匠)이 금석(金石)같은 신필(信筆)을 주었으니, 이것이 가히 백세에 빛날 것이다. 그러니 만생(晚生)의 아무것도 모르는 자가 무슨 말로 감히 군더더기 말을 하겠습니까.
비록 그러나 이 문집(文集)을 읽고 흥감(興感)되는 바는 실지로 있었을 것이니, 정기가(正氣歌) 한 편은 비록 과장(科場)에 나가서 응제(應製)로 지은 것이나 문승상(文丞相)의 곧은 충성과 피나는 마음을 거의 다 그린 것이다.
그 뒤에 남한산성(南漢山城)이 포위당했을 때 아들들에게 명하여 의병(義兵)을 일으키게 했고, 화의(和議)가 이루어지자 통곡하고 식사를 물리쳤으니 이는 실로 이 정기가(正氣歌)에 온축(蘊蓄)되어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지금 때는 위태롭고 형세가 어려워 정기(正氣)가 전혀 사라졌으니, 지사(志士)나 인인(仁人)이 마땅히 이것을 보고 눈물 흘리는 자가 있을 것이니 이것이 가히 세교(世敎)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아! 슬프다.
무신(戊申) 동지(冬至) 날 완산 류영필(柳必永)은 삼가 쓰다.

戇庵先生文集 당암선생문집
『당암선생문집戇庵先生文集』은 당암戇庵 강익문姜翼文(1568~1648)의 시문을 모아 1908년 목활자본木活字本으로 간행했는데 서문은 문소聞韶 김도화金道和가 지었으며 발跋은 완산完山 류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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