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책과 기록

화산실기(花山實紀)

천부인권 2026. 8. 18. 20:03

 

화산실기(花山實紀)는 일제강점기에 칠원읍 화천리에 살았던 박수진(朴秀鎭)의 시문으로 상하 2권을 한권의 책으로 엮었다. 노루지 접장에 석판본으로 인쇄했고, 오침안정법(五針眼訂法)으로 엮은 순 한문으로 된 세로글씨의 책이다.

권두에 중원(中園) 배문회(裵文會 1899~1984)와 청강(晴岡) 하재승(河在丞 1904~1972)의 서문(序文)이 있고, 권말에 박하식(朴夏植)의 발문이 있다.

이 책은 중고 거래 당근에서 83일에 울주군에 있는 판매자로부터 15,360원에 구입했고, 크기는 가로 18.2cm, 세로 26.6cm이며 92쪽이다.

 

 

花山實紀序

朴君仁熙遺其弟雲熙來示余 以花山實紀者一冊曰 此吾先人事行錄也 將付諸手民寳于 家乞吾子置一言 於卷頭余按而閱之花山 卽故秀鎭翁之別號 而卷首有自述詩二篇餘 則列鄕章甫之和酬 其晬朝詩并里鄕之以翁有孝行 而褒彰之狀與碑碣等文末 又附挽祭總成一部卷帙累累編章殆若散漫 而其足以徵當時 輿望物議之所屬 則又逼其實覽閱之際 余且不禁曠世之一嘅者昔余幼少時 與公翁居相隔里夙欽 其怡坦之氣度豐贍之襟 懷少無涯幅有可 以悅感人意者意謂 此翁將日必能 做大等出人之事若業矣 暨自島夷之瀆 我邦祿余 則不安素地遊放 於頭流南海之濱者數十年餘 伊間鄕黨之許多 有事總不得與焉 今於是錄可追想吾鄕風猷之不 以世變而有替 而亦可驗夫前吾所意之不差繆也 嗚呼挽近世潮益 又漓蕩夏夷之翻混人類之獸 且禽方目下事 而翁旣能盡性分之職事 如有若格于天感於物 而有所致焉 興發一時之民彛 而猶且爲來後之範模 此豈尋常之人所可辨得者 耶翁之沒 今有年其子若孫繁衍 而振振皆裕 於自食穩睦焉成一卷 繼述其先世之志與事 而無愧有如此 此抑又非翁之積累之勤恪 有聽于天而錫之以類者耶 仁熙之措 爲素朴而質 其意懇到 有足於起感人者 茲爲之叙述如右云爾

己酉冬至節 盆城 裴文會書

 

화산실기서(花山實紀序)

박군(朴君) 인희(仁熙)가 그 아우 운희(雲熙)를 보내 나에게 화산실기(花山實紀) 한 책을 보여주며 말하기를, “이것은 저희 돌아가신 아버님(선친)의 행록(行錄)입니다. 장차 인쇄하여 집안에 보물로 소장하려 하오니, 선생께서는 권두(卷頭)에 한 말씀 남겨주십시오.” 하였다.

내가 받아 펴서 읽어보니, 화산(花山)은 곧 돌아가신 수진(秀鎭) 옹의 별호(別號)이다. 권두에는 자술시(自述詩) 두 편이 있고, 그 나머지는 여러 고을 선비들의 화답시와 수연(회갑/생신) 축하시 45, 그리고 마을과 고을에서 옹에게 효행이 있다 하여 포창(褒彰)한 글과 비갈(碑碣) 등의 글이다. 끝에는 또 만시(挽詩)와 제문(祭文) 약간 편이 덧붙여져 전체 한 편의 책을 이루었다. 책의 분량이 제법 많고 편장이 다소 산만해 보일 수 있으나, 당시의 언론과 여론이 어디에 쏠려 있었는지를 능히 증명하기에는 충분하니, 실상에 매우 가깝다. 가만히 읽어내려가는 동안 나 역시 옛날을 돌아보며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내가 어린 시절, 옹과 떨어진 마을에 살면서 일찍이 그의 온화하고 평탄한 기두(氣度)와 풍부하고 넉넉한 품성을 흠모하였는데, 조금도 한계나 격식이 없어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감동시키는 바가 있었다.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분은 후일에 반드시 뛰어난 큰일을 해낼 것이다라고 여겼다.

그러다 왜적(일제)이 우리나라의 국권을 더럽힌 이래로, 나는 본래의 터전에서 불안하게 지내며 두류산(지리산)과 남해 바닷가를 수십 년 동안 방랑하였다. 그 사이에 고을의 수많은 일에 전혀 참여하지 못하였는데, 이제 이 기록을 보고서 우리 고을의 바람직한 풍속과 교화가 세상의 변화로 인해 쇠퇴하지 않았음을 추억할 수 있었고, 또한 이전에 내가 예상했던 바가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아, 근래의 세상 사조는 더욱 팍팍하고 거칠어져 오랑캐와 문명인이 뒤섞이고 인류가 수컷·암컷 짐승처럼 되어가는 것이 바로 눈앞의 일이다. 그러나 옹은 이미 성품에 따른 본분을 다하여, 하늘에 도달하고 사물에 감동을 주어 이루어낸 바가 있었다. 일시의 민의(民彛, 인간의 바른 본성)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후대의 모범이 되기까지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평범한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일이겠는가?

옹이 돌아가신 지 이제 몇 년이 지났는데, 그 자손들이 번창하고 번성하여 모두 스스로의 힘으로 온화하고 화목하게 살아간다. 책 한 권을 성취하여 선대의 뜻과 업적을 계승하고 서술함에 부끄러움이 없함이 이와 같으니, 이 또한 옹이 쌓아 올린 부지런함과 정성에 대해 하늘이 듣고 동류(同類)의 복으로 내려주신 것이 아니겠는가?

인희의 처신은 소박하고 진실하며 그 뜻이 간절하고 정성스러워 사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므로, 이에 위와 같이 서술한다.

기유년(己酉年 1969) 동짓달, 분성(盆城) 배문회(裴文會) .

 

중원(中園) 배문회(裵文會 1899~1984)

 

 

不佞在丞辭不獲己 而編花山實紀脫其稿 而正其訛原草只二頁諸賢慶晬帖詩四十五頁 其餘推薦狀表彰文 表孝碣之讚述者 而挽詩 又六十四頁祭文 若干篇而合成二不文 豈能使合於作者之規格 而整理之爲歟覽者 不以文而觀 其德行之實與否可也 謹按斂賢之讚詠 則公甫十歲遇東亂之甲午哀乞捕軍 而救活父命侍湯母病 而舉罩得鯉若居憂焉 盡哀禮治家焉 務孝睦奉先也 碣文而琢烈碑慕賢也 自擔而改儀物至 於款接待追從等事甕釀焉履弊焉 此皆公之平生所長 而鄕省士友之所 以歌頌之狀碣之 而今日實紀之所由 以成者也 洙泗之門先稱 德行後言文藝蓋顔冉未必 不有文學游夏未必有德行夫子明 其本末而稱其長 而進其不及也 今爲花山公 而作之者 無一言及 於文學之謂 則子夏子所謂吾必謂之學矣 者乎 吾友敬堂携 其嗣子仁熙而道 其意固請勿辭 故次整其篇兼書 此以爲花山實紀序

戊申立秋節 晉陽 河在丞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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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것없는 나 재승(在丞)은 사양하려 했으나 끝내 하지 못하여 화산실기(花山實紀)를 편찬하게 되었다. 원고를 탈고하고 오류를 바로잡았는데, 원초고는 단 2장이었고, 여러 현인들의 경수첩(慶晬帖, 생신 축하 시첩) 시가 45장이었으며, 그 나머지는 추천장, 표창문, 효행을 찬양한 비갈(碑碣)의 글들이었다. 만시(挽詩)가 또 64장이요, 제문(祭文) 약간 편을 합쳐 두 권으로 만들었다.

글재주가 없는 내가 어찌 글 쓰는 이의 규격에 맞게 정리할 수 있었겠는가? 글을 읽는 이들은 글로써 볼 것이 아니라 그 덕행의 실체 유무를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삼가 염현(斂賢)의 찬양과 읊조림을 살펴보건대, 공은 나이 겨우 열 살에 갑오년의 동학 난리(東亂)를 만나, 사로잡은 군사에게 슬피 빌어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여 살려냈다. 어머니의 병환에 탕약을 시중들고, 통발을 들어 붕어/가물치를 얻어 드렸으며, 상을 당하였을 때에는 슬픔과 예법을 다하였다. 집안을 다스림에는 효도와 화목에 힘쓰고 조상을 정성껏 모셨다. 비갈의 글을 돌에 새겨 비석을 세운 것은 선현을 흠모해서이며, 스스로 부담하여 제구(儀物)를 고치고,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고 어른을 추종하는 등의 일에 이르기까지 술을 담그고 신발이 닳도록 정성을 다하였다.

이것은 모두 공이 평생 동안 발휘한 장점이며, 고을의 선비와 벗들이 노래하고 송축하여 글과 비석으로 남긴 까닭이자, 오늘날 이 실기가 만들어지게 된 바탕이다.

수사(洙泗, 공자의 문하)의 학문에서는 먼저 덕행을 일컬었고 그 다음에 문예를 말하였다. 대체로 안회(顔回)와 염경(冉耕)이라고 해서 반드시 문학에 능통했던 것은 아니며, 자유(子游)와 자하(子夏)라고 해서 반드시 덕행만 뛰어났던 것은 아니다. 부자(공자)께서는 그 본말(本末)을 밝히시어 그 장점을 칭찬하고 그 미흡한 점을 진취시키셨다.

이제 화산공을 위하여 글을 짓는 이들이 문학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으나, 이는 곧 자하(子夏)가 말한 나는 반드시 그를 학문을 하였다고 이를 것이다라고 한 바가 아니겠는가?

내 친구 경당(敬堂)이 그 후사(嗣子)인 인희(仁熙)를 데리고 와서 그 뜻을 말하며 강력히 사양하지 말기를 청하였기에, 이에 그 편장을 정리하고 아울러 이 글을 써서 화산실기의 서문으로 삼는다.

무신년(戊申年 1968) 입추절, 진양(晉陽) 하재승(河在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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