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림동 20

창원 봉림동의 지명탄생과 태백산의 근거

봉림동 역사의 시작 봉림동은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존재하고 가야시대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군이 봉림산鳳林山 자락을 따라 펼쳐져 있는 역사가 살아있는 땅이다. 532년 밀양의 이궁대에서 가야의 10대 구형왕이 신라의 법흥왕에게 나라를 선양하자 가락국을 사랑한 많은 무리들이 이곳 퇴로촌退老村에 들어와 정병산精兵山에서 병사를 조련하고 말을 키우며 가락국 회복을 위해 힘을 키웠던 땅이다. 그래서 퇴로촌을 진촌進村이라 불렀는데 지금의 퇴촌동退村洞이 그곳이다. 우리가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물러날 退’라는 글에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으니 즉 '나아갈 진進' 앞으로 나아 갈 수밖에 없다.’는 숙명적인 뜻이 담겨 있는 말이다. 퇴계 이황선생이 자신의 호에 사용한 이유도 같은 의미이다. 나라를 세우기 위한 ..

도굴로 엉망인 창원 봉림동 고분군

창원시 봉림동 산122, 산125~127번지 일대에 분포된 가야시대, 조선시대 고분군은 창원분지의 북쪽 외곽부에 위치해 있다. 창원대학교박물관(1995)의 조사에 의하면 유적은 지도상으로 정병산(566.7m)의 서쪽 봉림산(298.3m)에서 남으로 쭉 뻗어 내려온 구릉 말단부에 해당되며 봉림소하천에까지 이어진다. 현재까지 봉림동고분군에 대해서 정식으로 발굴 조사된 적은 없다. 다만 지표조사를 통해서 볼 때 인근지역의 고분유적과 같이 목곽묘, 석곽묘 등이 혼재되어 있으며 특히 주 구릉을 따라 정점부에는 다수의 봉토분 흔적이 있다. 1986년 지표조사에서는 훼손되어 방치되어 있는 소형석곽묘에서 항아리 2점, 굽다리 접시 1점이 채집되어 있으며, 인근 마을의 주민들도 이곳에서 출토된 그릇받침을 소유하고 있다고..

창원시 예산만 낭비한 점자블록 실태(3)

보통 점자블록은 생각하지 않고 길이 있으니 걸어가고, 내 자신의 일상이나 동행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나 나누면서 걷는 것이 일반적인 일인데, 장애인점자블록의 설치가 바르게 되어 있는지 살피면서 공무원도 아닌 제가 돈도 생기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이 어찌 생각해보면 상당히 우..

봉림산 야생차 따는 날

봉림산 야생차 따는 날 2009년 4월 15일 아침 “반딧불이”가 주최한 『봉림산 야생차 따기 체험』을 우리 동네 몇몇 분과 문화해설사 과정을 공부하시는 2분이 참석하여 봉림산 야생차 군락지에서 차 따기 체험을 하였다. 차 군락지에 약수가 있어 그 곳에서 간단한 인사와 차에 대한 설명을 한 후 각자 봉지를 하나씩 들고 차나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오랜 가뭄으로 인하여 잎이 많이 자라지 못해 별로 수확이 없었지만 체험을 통한 재미는 생각보다 솔솔 했다. 차 잎을 따면서 하나씩 먹어보니 쌉스름한 맛 속에 뒤끝이 달콤하면서도 개운한 것이 여간 맛난게 아니었다. 체험행사를 하는 우리들 말고도 이 야생차를 채취하러 온 분들이 계셨는데 그분들의 손놀림은 한두 해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마련한 돼지고기 수육과 막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