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향교 37

칠원향교로 인력을 요청하는 통문 通文

이 통문은 퇴촌 순흥안씨 집에 보관되어 오던 문서로 1902년 창원향교의 이름으로 두곡영당의 중수를 위해 칠원향교에 인력을 보내 달라는 협조문이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通文 右文爲奉告事 伏以文昌公海雲崔先生 道德文章 陞配聖廡 則不待鄙等之言而一千年 海東章甫 孰不崇奉而矜式哉 鄙郡卽先生嶽降¹⁾ 之鄕 而臺有孤雲月影臺之西北隅 建院而俎豆以享之 中年撤院之後 別立一祠于斗谷 姓孫洞奉眞影以妥矣 遺像年舊爍落寓慕無憑 齎嗟莫及 至於昨秋 影幀一本 敬模於河東之校宮 奉安舊祠 祠亦毁頹 經始重建而貿瓦 於昌寧等地水運 抵貴郡則慕賢尊奉之地 不可異同於本他邑也 以此稟告于貴郡 官司出丁 運致於鄙邑界 則鄙邑役丁當待于本郡界矣 以此諒之 勿失期會 千萬 幸幸甚甚 右文通于漆原鄕校 壬寅九月十八日 昌原鄕校 齋任 : 安斗馨 李炳鍊 金鍾淳 會員 : 金宗琪 安琦錫 金..

창원 한강 정구 노닐던 관해정 觀海亭

합포구 교방동 237번지는 창원에서 유림들이 선비로써 모습을 갖추게 한 한강 정구(寒岡 鄭逑)선생이 노닐며 강학했던 관해정(觀海亭)이 있는 곳이다. 이 관해정은 임진왜란 이전에 건축하려 했으나 병화로 세월이 흘렀고 또 왜란 이후 황폐화된 이 땅의 상황으로 10년이 넘어서 장문재(長文載)의 도움으로 아주 힘들게 건설됐다. 두척산 물줄기가 창원만으로 향하는 산의 가장자리에 편평한 암반을 소요처로 삼아 건설된 관해정은 그 시대를 뛰어 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명소가 되었다. 관해정과 회원서원의 존재로 인해 이 계곡의 이름도 ‘선비가 공부하고 강학했다’는 뜻을 담은 서원곡(書院谷)이라 불린다. 또한 한강선생도 밝혔듯이 신라에서 탄생한 비운의 천재 고운 최치운(崔致雲)선생의 별서(別墅)가 ..

창원향교 - 창원시장 취임 고유례 봉행

2018.9.8 허성무 창원시장 창원향교에서 고유례 봉행 창원시 허성무시장이 9월 8일 14시 30분에 창원향교(전교 김혁래)에서 이번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18.06.13.)에 창원시장으로 당선 된 후 바쁜 일정으로 미루어 오던 고유례를 봉행했다. 이날 창원향교 장의 및 여성회원 40여명이 참석하고 허성무 창원시장의 의전을 위해 황진용 의창구청장 및 담당 공무원들이 참석했다. 허성무시장의 고유례 봉행을 위해 창원향교 김혁래 전교 및 수석장의들이 창원시 담당관과 협치를 하였고 이 과정에서 항원향교의 위상과 미래의 발전방향을 논의하는 시간도 가졌다. 고유례(告由禮)란 ‘국가나 개인이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선현들에게 그 이야기를 알리는 의식으로 전통시대부터 그 고을의 수령(지도자)은 향교 대성전에 ..

창원향교 동·서재에 남긴 애틋한 옛 사연

창원향교는 성현의 뜻에 따라 인륜을 밝히고 풍속을 돈독히 하는 제례(祭禮)와 교육(敎育)의 공간이다. 크게 3영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성현(聖賢)에 대한 제사를 봉행하는 제향 기능을 주관하는 대성전(大成殿)과 동·서무(東·西廡)가 있고, 유생에게 유학(儒學)을 교육하는 교학 기능의 명륜당(明倫堂)과 동·서재(東·西齋)의 영역이 있으며, 지방의 문화 향상 등을 도모하고 풍속을 교화하는 사회 교화 기능을 함께 갖고 있는 풍화루(風化樓)의 영역이 있다. 조선시대의 성균관과 향교는 엄밀히 말해 불교나 기독교와 다른 내세관(來世觀)이 배제 된 교육과 통치의 수단이 함께하는 형태의 종교이다. 따라서 유생들은 성현의 뜻을 쫓아 성경을 배우고 자신을 수련하여 나라를 발전시키는 주역이 되고자 끊임없이 노력 했다. 향교에..

창원향교 풍화루기와 풍화루 영역

2016.11.7 창원향교 홍살문과 풍화루가 있는 풍경 창원향교가 청룡산(靑龍山) 아래에서 이곳 태을산(太乙山) 아래로 이건 한 후 가장 나중에 세운 건물이 출입문인 풍화루 이다. 풍화루를 창건한 임익창(任益昌) 부사는 경진년(庚辰年 : 1760) 2월에 부임하여 임오년(壬午年 : 1762) 7월에 교체 되었다. 손사익(孫思翼)선생이 소양(癸未年 : 1763) 3월에 쓴 풍화루기(風化樓記)는 기록만 있고 현판은 없다. 풍화루 앞에는 “부사임후익창풍화루창건비(府使任侯益昌風化樓剏建碑)”가 세워져 있으며 비문은 부사가 떠난 3년 후인 1765년 당시 삼도수군통제사가 지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2017.2.11. 창원향교 풍화루 風化樓記 於休遠哉 三代敎法 家有塾 黨有庠 州有序 國有學 無適非學而蓋所以 風化天下 試考..

창원향교 중수기와 명륜당 중수기 및 상량문 등

2014.10.8. 창원향교 명륜당 풍경-花階가 잘못되어 있을 때 모습 창원향교는 크게 제례 영역인 대성전과 동·서무, 교육 영역인 명륜당과 동·서재를 비롯하여 출입문인 홍살문과 풍화루가 있다. 그러나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5호로 지정이 된 곳은 제례 영역인 대성전 1동이며 보호구역은 5,025m² 중 지정구역은 221.4m²(약 67평)이다. 그러다 보니 명륜당과 풍화루가 문화재가 아닌 보호 건물로 남아 있어 품격이 떨어지는 모양새이다. 명륜당과 풍화루 역시 전통시대의 맥을 간직한 소중한 문화유산인데 홀대를 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따라서 옛 기문들을 살펴보면서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문화재 지정을 하여 품격에 걸맞은 위치를 찾아 줘야할 것이다. 20..

창원향교 대성전 연혁과 이건기 중수기 상량문 비문

창원시 의창구 의안로59번길 10에 위치한 창원향교(昌原鄕校) 대성전(大成殿)은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5호로 지정되었다. 창원향교는 조선시대 일읍일교(一邑一校)의 원칙에 따라 수령이 파견된 지역에 설치한 향교로 유교(儒敎) 교육기관이다. 창원 향교의 창건 연대에 대하여는 다양한 설이 제시되어 있으나 최초의 이건(移建)은 알기 어려우며 대체로 1705년(숙종31) 부사 신명식이 부의 서쪽 5.89㎞에 있는 내상리(內廂里 : 현 합성동 제2금강산 입구) 청룡산(靑龍山) 아래에 옮김으로써 시작되었다. 이후 1705년(숙종 31)에 이읍(移邑) 논의가 있어 부사 신명식(申命式)이 도감(都監) 박태윤(朴泰潤)과 함께 향교를 천주산(天柱山) 아래의 50보(步) 떨어진 곳으로 옮겼다. 창..

창원향교 전적류 문화재자료 제635호 지정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창원향교 전적류 창원향교는 지난 2015년 8월 소유하고 있던 창원향교 전적류(昌原鄕校 典籍類)를 경상남도에 문화재 등재를 위해 절차에 따라 자료를 재출했고 2017년 4월 13일자로 문화재자료 제635호로 지정 받았다. 이들 책은 총 9권이고, 제목은 광국지경록(光國志慶錄), 계고록(稽古錄), 계고록상(稽古錄上), 계고록중(稽古錄中), 윤음(綸音), 윤음 유경기(綸音 諭京畿), 윤음 유육도(綸音 諭六道), 윤음 유진읍綸音 諭賑邑), 탕감 윤음(蕩減 綸音) 등이다. 한문으로 기록한 윤음 같은 내용을 훈민정음으로 기록한 윤음 광국지경록(光國志慶錄)은 조선 선조 때의 종계변무(宗系辨誣) 완수를 축하하여 펴낸 시집이고, 계고록(稽古錄)은 사마광이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짓고 부족한 부분을 계..

추기석전대제 제관 廟司(묘사)의 분정과 역할

2016년 9월 2일 昌原鄕校(창원향교)에서는 조선초기부터 전해오는 秋期釋奠大祭(추기석전대제)를 지낸다. 이에 앞서 약 한달 전에 창원향교를 출입하는 儒生(유생)들 중 대표성을 띄고 있는 掌議(장의 : 오늘 날 학교의 반장 역할이라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하위 벼슬이다.)와 각 지회장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會議(회의)를 소집하여 祭官(제관)들을 천거한다. 이러한 절차를 통해 제관을 천거하고 결정하는 행위를 일러 爬定(파정)이라 한다. 파정을 통해 이루어진 제관들의 임무를 부여하는 행위를 執事分定(집사분정)이라 말하는데 제사를 지냄에 차질이 없도록 제관들 각자에게 역할을 부여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절차를 통해 모든 제관들이 정해지면 각자 제관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리는 통지문을 보내게 되는데 통지문을 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