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수리(烏首里)는 영조(英祖) 45年(1769)읍내면(邑內面) 동부(東部) 오수항방(梧樹項坊)이었으나, 고종(高宗) 32年(1895)죽림(竹林)과 오수리(烏首里)로 분리하면서 바꾸고 1915年 오수리(烏首里)로 법정(法定)하였으며, 1942年 구제실시(區制實施)로 죽림(竹林)과 오수(烏首)의 2구(二區)를 1961年 10月 1日 행정리(行政里)가 되었고 선창(船艙)마을이 분리되었다.

『거제면 죽림마을 노거수와 신당』은 거제면 죽림1길 69-28, 카페 ‘엄마의바다’ 정원에 위치한다. 좌표는 34°50'34"N 128°34'54"E이고, 고도는 47m이다. ‘거제면 오수리(烏首里) 1006’은 까마귀의 눈에 위치하는데 지금은 주위를 평삭(平削)하여 정원을 만들고 신당이 있는 곳만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다.
이곳의 신당이 왜식(倭式)인 것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죽림에 거주하면서 풍어와 안녕을 비는 곳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는 증표이다. “대산기신사(大山祇神社, 오야마즈미 신사)”는 일본의 세토 내해의 오미시마 섬에 위치한 신사로 에히메 현 이마바리시(愛媛県今治市)에 있는 신사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노거수는 6그루인데 모두 곰솔이다. 갑작스런 환경의 병화로 인한 때문인지 고사한 나무와 고사 직전의 모습을 띠고 있는데 가장 굵은 나무의 가슴높이 둘레는 257cm이고, 높이는 20m 정도이며 수령은 250년 정도로 추정했다.
당산나무 역할을 하는 노거수 옆에는 신당이 있는데 돌로 지어진 신당의 모양이 일본식이다. 내부에는 “대산기신사(大山祇神社, 오야마즈미 신사)”란 글씨를 새긴 비좌원수형(碑座圓首形)의 비석이 있는데 제례를 지낸 흔적으로 마른 명태가 비석의 금줄에 묶여 있다. 현재는 죽림마을 사람들이 마을 신당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죽림마을은 거제현의 선소가 있던 곳으로 곤발네 할매가 기도하던 미륵불이 모셔진 당집이 마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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