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강유고(鳳岡遺稿)』는 밀양 초동면 봉대촌(鳳臺村)에 살았던 고성이씨(固城李氏) 이승규(李承圭)의 시문을 1995년 아들 삼 형제(창희, 태희, 호희)가 발행한 책으로 회상사에서 인쇄·발간 했다. 노루지 접장의 오침안정법(五針眼訂法)으로 엮은 순 한문으로 된 세로글씨의 책이다.
권두에 봉강거사 유영(鳳岡居士 遺影)과 유택(幽宅), 봉강헌(鳳岡軒)의 사진을 붙이고, 서문(序文)은 화재(華齋) 이우섭(李雨燮 1931~2007)이 지었으며, 권말의 발(跋)은 아들 창희(昌羲), 태희(太羲), 호희(昊羲)가 썼다.
『봉강유고(鳳岡遺稿)』 중고 거래 ‘당근’에서 8월 17일 대구 수성구의 판매자로부터 13,820원에 구입했고, 크기는 가로 19.5cm, 세로 28.7cm이며 138쪽이다.




序
鳳岡居士李公既殁之二十六年 而其遺文一帙之在巾衍者 諸子將付之梓 次胤太義千里委訪要余序 其卷余辭以荒陋之筆不能藉重 公而請益勤終不獲已 而夷閱其稿蓋 其爲文詩居三之二 而書序雜文次之其詩槩出 於士友之唱酬山水之壯觀 而其遇境寫懷因物託 興者類皆寫出胸臆不假琱琢 而往往天趣自露即此 而亦足以想見 其爲人也 夫士之自拔於流俗 而不撓於利勢之外至 超然獨行其志者 苟非磊落之志氣 疏曠之清趣不能 而其志氣之所 以激昂胸懷之所 以展拓者亦未始不由 於山水清曠之觀有 以助之而例非獨修孤吟 於一室之中者 所可比擬也 公之壯遊名勝而寄興 於山水之中者 所可比擬也 公之壯遊名勝而寄興 於山水者其志豈非以此也哉 是以雖遭値滄桑震蕩之會 而優遊於文禮之數 畢生惓惓 於紹先牖後之策 爲一門之蓍龜一方之柱石者無非資 於志氣之激勵 胸懷之開拓者 有以致之則 其所得豈特 詩文之癖而已哉 且跧居草澤 與世無求 而德化之所施尚溢于 月朝之稱矣 然則是稿之所載者 雖無燁然之觀 而公之文 以實而爲貴 其可傳者 在於行學 而是稿者特 其影象矣 世之務實君子必不恨 於其少而知其所貴矣夫
乙亥白露節 完山 李雨燮謹叙


서문(序)
봉강거사(鳳岡居士) 이공(李公)이 세상을 떠난 지 이미 26년이 되었다. 그가 남긴 글 한 질(帙)이 상자 속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여러 아들이 장차 이를 간행하려 하였다. 둘째 아들 태의(太義)가 천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나를 찾아와 그 책의 서문을 써 달라고 청하였다.
나는 글솜씨가 거칠고 보잘것없어 이 책의 가치에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사양하였으나, 공의 아들이 거듭 간곡히 청하므로 끝내 사양할 수 없었다. 이에 원고를 대략 살펴보니, 그 가운데 문장과 시가 3분의 2 정도를 차지하고, 서(書)·서(序)·잡문(雜文)이 그 다음을 이루고 있었다.
그의 시는 대체로 벗들과 주고받은 수창(唱酬)의 시와 산수의 장관을 읊은 것에서 나온 것이었다. 또 경치를 만나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거나, 사물을 보고 흥취를 부친 작품들은 모두 가슴속에서 우러난 생각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어서 일부러 꾸미거나 다듬지 않았다. 그런데도 곳곳에서 자연스럽고 천진한 정취가 저절로 드러난다. 이것만 보아도 그의 사람됨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대저 선비가 세속의 풍조에서 스스로 벗어나고, 이익과 권세에 흔들리지 않으며, 초연하게 자신의 뜻을 홀로 지켜 나아가려면, 반드시 우뚝하고 떳떳한 기개와 탁 트이고 맑은 정신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개가 가슴속에서 격앙되고 그 마음이 넓게 펼쳐지는 데에는 또한 맑고 드넓은 산수의 경관이 도움을 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는 단지 한 칸 방 안에서 홀로 수양하며 시를 읊는 사람과는 견줄 수 없는 것이다.
공이 이름난 명승지를 두루 유람하고 산수 속에 자신의 흥취를 부친 것도 어찌 이러한 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이 때문에 비록 세상이 크게 변하고 혼란과 격동을 겪는 시대를 만났지만, 공은 문(文)과 예(禮)의 도리를 즐기며 평생토록 선조의 뜻을 이어받고 후학을 이끌 방책에 마음을 다하였다. 그리하여 한 집안에서는 귀감이 되는 인물이 되었고, 한 지방에서는 기둥과 주춧돌 같은 인물이 되었다.
이러한 모든 것은 그의 뜻과 기개를 격려하고 가슴속의 포부를 넓혀 준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얻은 것이 어찌 단지 시문을 짓는 취미에 그쳤겠는가?
또한 그는 초야에 은거하여 세상에 바라는 것이 없었지만, 그의 덕이 끼친 영향은 오히려 향리에서 그를 칭송하는 명성에까지 넘쳐났다.
그렇다면 이 원고에 실린 글들이 비록 눈부시게 화려한 볼거리는 아닐지라도, 공의 글은 내용과 실질이 충실한 것을 귀하게 여긴 것이다. 그가 후세에 전할 만한 가치는 글 자체보다는 그의 행실과 학문에 있으며, 이 원고는 다만 그것을 비추어 보여 주는 하나의 모습일 뿐이다.
세상의 실질을 중시하는 군자라면 이 원고의 글이 많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가운데 무엇이 진정 귀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을해년(乙亥) 백로절(白露節)에
완산(完山) 이우섭(李雨燮)이 삼가 서문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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