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 1263

진동면 인곡리 동래정씨 이안재 易安齋

2020.1.16. 동래정씨 이안재(易安齋) 진동면 인곡리 313-4번지는 창원공원묘원 안쪽 옛 인곡마을이 위치했던 곳으로 마을은 철거 되고 동래정씨(東萊鄭氏)의 재실인 이안재(易安齋)만 옛 마을을 지키고 있다. 건물은 시멘트벽돌구조이고 대문은 잠겨 있다. 아는 지인의 요청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곳은 방문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안재의 내부를 살폈으나 이안재창건기(易安齋刱建記) 외는 다른 글이 없었다. 그러나 재실 뒤쪽에는 수기의 묘역이 있고 2기의 묘비가 서 있어 그 내용은 다음에 옮겨 볼 것이다. 이곳은 위치기반고도계가 해발 144m를 가리키고 「위도 35°08′40″N 경도 128°31′14″E」라 알려 준다. 이안재 (易安齋) 대문인 광인문(廣仁門) 전경 광인문(廣仁門) 편액 동래정씨 이안재..

북면 상천리 김효자삼곤제기적비 金孝子三昆弟紀積碑

2019.4.2. 처사김해김공휘현구창효비(處士金海金公諱顯昫彰孝碑)와 김효자삼곤제기적비(金孝子三昆弟紀積碑) 의창구 북면 상천리 435번지에는 『처사김해김공휘현구창효비(處士金海金公諱顯昫彰孝碑)』와 『김효자삼곤제기적비(金孝子三昆弟紀積碑)』가 있다. 이곳은 위치기반고도계..

동읍 봉곡리 영일정씨 상운전 祥雲殿

의창구 동읍 봉곡리 433-1번지에는 고려말 충신의 표본이라 말하는 정몽주의 후예(後裔) 영일정씨(迎日鄭氏)가 지은 재실 상운전(祥雲殿)이 있다. 예전에는 상운전(祥雲殿)의 대문채인 봉연재(鳳延齋)에서 서쪽으로 170m 떨어진 곳에 오월당영일정씨사적비(梧月堂迎日鄭氏事蹟碑)와 유인영일정씨효행비(孺人迎日鄭氏孝行碑) 등이 있었으나 봉곡리를 관통하는 도로공사로 유인영일정씨효행비(孺人迎日鄭氏孝行碑)는 그곳에 묻었고 오월당영일정씨사적비(梧月堂迎日鄭氏事蹟碑)는 봉연재(鳳延齋) 앞에 옮겨 세웠다고 한다. 이 오월당사적기(梧月堂事蹟記)는 유당 김종하가 쓴 창원군지에 실려 있다. 오월당영일정씨사적비(梧月堂迎日鄭氏事蹟碑) 내용을 아래와 같이 옮겨 적었다. 梧月堂迎日鄭氏事蹟碑記 古之名堂者 各有其意 或取其幽僻 戓取其閒 或取其踈..

400년 전 창원부사가 기우제 올린 성주사 聖住寺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인 1617년 창원지역에 비가 내리지 않아 창원부사 신지제(申之悌)가 기우제(祈雨祭)를 지내기 위해 웅신사(熊神寺) 즉 지금의 성주사(聖住寺)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지은 애절한 시(詩)가 있어 소개를 한다. 전통사회에서는 농경이 경제의 첫 번째이고 치수(治水)가 지도자의 가장 큰 덕목이었던 시대를 살아 온 선인들의 생활상을 엿 볼 수 있는 제례의 한 단편을 본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기우제는 천주산(天柱山)의 용지봉(龍池峰)에서 지내 왔다는 설(說)들이 있었는데 실제로 부사가 기우제를 올린 곳은 성주사 곰절임을 밝힌 자료이다. 또한 기우제문을 짓는 형식도 감상할 수 있어 사람의 마음을 위로할 때 사용한 심리치료의 형식을 넌저시 보게 된다. 熊神寺¹⁾-申之悌²⁾ 기우제를 지내..

창원시 퇴촌동 순흥안씨 세거지 첨소대 瞻掃臺

2020.1.2.퇴촌동 퇴은처사소요지지 마애석 2020.1.2.퇴촌동 첨소대와 순흥안씨세장 이 기록 된 마애석 의창구 퇴촌동 산 73번지는 창원대학교 동력실 뒤편의 산인데 원주민들은 ‘똥메산’이라 부르지만 기록으로 적을 때는 ‘독뫼산(獨뫼산)’이라 쓴다. 이곳은 퇴촌동 순흥안씨들이 대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