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 1264

창원시 용원동 유주각과 부인당비

용원동 산 197번지에 위치한 維舟碑閣(유주비각)은 경상남도 기념물 제89호로 지정이 되었다. 유주비각은 융희 2년(1908년) 11월에 김해허씨 문중에서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와가로 건설했다. 비각 안의 維舟碑(유주비)는 높이 175cm, 폭 76.5cm, 두께 35cm이다. 정면에는 ‘大駕洛國太祖王妃普州太后許氏維舟之地(대가락국태조왕비보주태후허씨유주지지)’라 새겼다. 유주비각을 이곳에 세운 이유는 가락국 수로왕이 도읍을 정한지 7년만에 신하들이 왕비를 맞이할 것을 말하자 “내가 여기에 온 것 같이 왕비 또한 하늘이 주실 것”이라며 진해구 용원동 바닷가에 나가 기다릴 것을 명하고 기다리니 어느 날 서남쪽 해상에서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배한척이 다가왔다. 그 배는 阿踰陀國(아유타국)의 공주..

창원시 구암동 정봉락 처 은진송씨지려

창원시 구암동 13-3번지에는 3층 건물이 있고 바로 옆에 ㄷ자의 벽돌로 담을 쌓고 입구엔 철문을 달아 둔 비각이 도심 속에 있다. 맞은편에는 구암1동작은도서관이 위치해 있어 비교적 찾기는 쉽다.    비는 ㄷ자의 담장을 하고 전면에 철재로 문을 달았으며, 시멘트로 기단을 만들고 좌우에 편석을 세운 후 그 위에 지붕돌을 얻어 여각의 형태를 만들었다. 지붕돌 아래에는 가로로 석편액을 넣고 ‘鄭鳳洛妻恩津宋氏之閭(정봉락처은진송씨지려)’라 적고, 그 옆에 光武九年九月三十一日 命旌(광무구년구월삼십일일 명정)이라 새겨 1905년 9월 31일에 세웠음을 알게 했다. 비신은 碑座圓首(비좌원수)형으로 ‘鄭烈婦宋氏旌閭碑(정열부송씨정려비)’로 시작하는 비문을 적었다. 비신의 뒷면에는 安東 權龍鉉(안동 권용현)이 撰(찬)하고..

창원시 외동 절강 팽씨 부자 포효비

창원시 성산구 외동 626-4번지에 위치한 ‘外洞 浙江彭氏父子褒孝碑(외동 절강팽씨부자포효비)’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彭友德(팽우덕) 장군과 그의 아들 彭信吉(팽신길) 장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이 비는 전면에 ‘浙江彭氏父子褒孝碑(절강팽씨부자포효비)’라 새겼고, 비의 크기는 기단의 높이가 총 95cm, 이수에서 비신까지 229cm, 비신 높이 157cm, 너비 62cm, 높이 28cm이다. 비의 측면에는 辛亥十月小雪日(신해십월소설일)이라 기록하고 있어 음력 1971년 10월 22일에 이 비를 세웠음을 알 수 있다. 漢山 安朋彦(한산 안붕언)이 비문을 짓고, 盆城 金成學(분성 김성학)이 글씨를 썼으며 후손 應柱(응주)가 세웠다고 적었다. 임진왜란 때 명의 지원군 50여 장군 중에 禦倭摠兵 ..

내서읍 상곡리 이원순이 통곡한 서대

내서읍 상곡리 14-5번지에는 아들 당산나무라 불리는 상곡리 西臺(서대) 느티나무가 있는데 나이 100년이고, 가슴높이 둘레는 210cm, 높이는 13m 정도이다. 이 당산나무 아래에는 대한제국의 멸망이라는 비극을 함께한 창원지역 유림의 통곡을 담은 西臺(서대)라 적은 비석이 있어 지역의 역사를 아는 분들이 귀중히 여기는 곳이다. 요즘 새로 세운 서대의 해석비문에는 아래처럼 적어 두었다. 『내서면 상곡리 읍산재 뒤에 있는 이 서대는 이 마을에 살던 성주이씨 원순이 1918년 광무황제 승하 시에 北向望哭(북향망곡)하던 곳이다. 이원순 공의 자는 도여(道汝), 호는 소여(小廬)라 하고 조선말 철종 14년 1863년 11월 10일 상곡리 출생으로 어릴 때부터 재주가 능하야 晝耕夜讀(주경야독)하며 부모 섬김에 ..

구산면 난포리 효자 김봉주 포효비 褒孝碑

구산면 난포리 342번지에는 남포리 버스정류장과 함께 500년 된 팽나무 노거수가 자리를 하고 있으며, 노거수의 바로 뒤편에 ‘남포리 김봉주 효자비’가 세워져 있다. 이곳은 봉화산이 바다와 이어지는 끝자락이라 ㄷ자 형태로 흙을 파고 돌로 석축을 한 다음 전면에 철문을 달고 그 안에 화강암으로 비대를 세우고 비신은 烏石(오석)으로 가로 길이가 긴 직사각형으로 했다.     비신의 전면에는 「勅命(칙명) 通政大夫(통정대부) 金鳳周陞從(김봉주승종) 二品嘉善大夫者(이품가선대부자) 光武九年十月八日(광무구년십월팔일 1905년) 大皇帝陛下 特命 加資時奉(대황제폐하 특명 가자시봉) 勅(칙) 淑夫人爲貞夫人(숙부인위정부인)」이라 새겼다. 비의 뒷면에는 완의문의 원문을 새겼다.      비 앞에는 한글로 완의문 내용을 번역..

진해구 남문동 개고개 입구 쌍효각 雙孝閣

창원시 남문동 산 1063-3번지에는 진해 남문동에서 웅신 고개[개고개]로 올라가는 길 왼편에 虎患(호환)을 당하여 생명이 위독하게 된 부친을 구한 아들 徐志淳(서지순 1734~1801), 며느리 경주 이씨의 효성을 기리는 정려가 있다. 이 정려에는 李載現(이재현)이 쓴 雙孝閣(쌍효각)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고 내부에는 “孝子戶曹參判徐志淳之閭(효자호조참판서지순지려), 孝婦貞夫人慶州李氏之閭(효부정부인경주이씨지려)”라 적은 편액이 정면에 나란히 걸려있다. 또한 벽 좌우에는 雙孝傳(쌍효전)과 三綱錄(삼강록)이 붙어 있다. 그리고 雙孝閣(쌍효각) 좌측에는 효자달성서공지비 및 효부정부인경주이씨지비라 새긴 碑座圓首(비좌원수) 형의 비석도 세워져 있다. 이 雙孝閣(쌍효각)에 얽힌 이야기의 내력은 다음과 같다. 『곰메에..

웅천 남양동 열녀 박형직 처 정씨지려

烈女 朴衡直 妻 鄭氏之閭(열녀 박형직 처 정씨지려)가 위치한 곳은 진해구 남양동 104-2번지이다. 朴衡直 妻 鄭氏之閭(박형직 처 정씨지려)는 웅동에서 웅천 방향으로 가는 장고개에 위치해 있는데 진해대로를 달리는 차량의 속도가 빠른 편이고 도로 가장자리에 주차를 할 수 없다. 그러나 딱 한곳 산으로 가는 시멘트 길이 약간 있어 이곳에 차량 주차가 가능하고 여기에서 20m 산길을 오르면 보인다. 진해대로(국도 2호)에 인접해 있는 곳이지만 위치를 정확히 모르면 찾기가 쉽지 않은 산기슭에 있다. 이 여각 아래 월남마을에는 밀양박씨제실(진해구 남양동 10-38)이 있다. 필자의 경우 무작정 기록에 있는 월남마을을 찾아가 박씨제실이 있는 곳으로 가니 마침 박씨 문중의 사람을 만나 비의 위치를 알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