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227

창원시 봉곡동 분성배씨 화수재花樹齋

2018.03.27 봉곡동 분성배씨 화수재 창원시 의창구 봉곡로111번길 39에는 분성배씨 화수재(花樹齋)가 건설되어 있다. 이 건물은 옛 웅남면 목리마을에 있던 재실을 창원공단의 건설로 마을이 사라지자 이곳으로 이건하여 왔다. 화수재기(花樹齋記)에 의하면 분성군(盆城君) 원룡(元龍)의 7세손인 각봉공(覺峰公) 휘 필문(弼文)이 웅남면 목리 마을로 이주해 오면서 창원에서 세거하게 된 집안이다. 봉곡동에 재건된 화수재의 대문에는 향양문(向陽門)이라는 편액을 단 것은 아마도 이곳에서 옛 세거지 목리(木里)는 남쪽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향양문(向陽門)-해(陽)가 뜨는 남쪽 고향을 향(向)해 서 있는 문 분성배씨 화수재(花樹齋) 편액과 균시헌(均是軒), 여재실(如在室) 등의 편액 글씨는 백당 정기헌(白堂 鄭基..

진전면 고사리 거락마을 경주박씨 낙동재 洛東齋

창원시 진전면 의산삼일로 146에 위치하는 낙동재(洛東齋)는 경주박씨(慶州朴氏)의 재실(齋室)이다. 조선(朝鮮) 때 저작(著作)을 지낸 박앙(朴盎)이 단종애사(端宗哀史)로 함안군(咸安郡) 군북면(郡北面) 평광리(平廣里) 백이산하(伯夷山下)에서 은거(隱居)하였다. 그의 십오세손(十五世孫) 박영벽(朴永壁)이 이곳 고사리 거락동(巨洛洞)에 세거(世居)하여 문중(門中)을 이룬 곳이다. 洛東齋事實記 경주박씨(慶州朴氏)는 신라(新羅)성왕(聖王) 휘(諱)혁거세(赫居世)시조(始祖)로서 오대엄마왕(五代淹摩王)의 자손(子孫) 충열공(忠烈公) 휘(諱) 제상(提上) 호(號) 관설당(觀雪堂)이 중조(中祖)이시고 이조(李朝)에 이르러 휘(諱) 연(盎)께서는 세종조(世宗朝) 집현전(集賢殿) 학사(學士)로 신미년(辛未年; 一四五一年..

진전면 양촌리 대정마을 남평문씨 산하정 山下亭

창원시 진전면 의산삼일로 33-1에 위치한 산하정(山下亭)은 남평문씨(南平文氏) 외암옹(畏庵翁)을 추모(追慕)하여 그의 아들 문정각(文正覺)씨가 1960년에 지은 정자(亭子)이다. 외암옹(畏庵翁)은 한천서당(寒泉書堂)을 창건(創建)하여 많은 후학들을 배출 하는 등 선행을 베풀었다. 2018.3.20 산하정 솟을삼문 솟을문에는 청류문(聽流門) 편액이 걸려 있다. 산하정 마당에서 본 풍경 산하정(山下亭) 외암헌(畏庵軒) 山下亭記 舊咸州之治三十里天皇山下大井之坊有新構而翼然翬華者曰山下亭文君正覺慕其先考畏庵翁而作也翁南道望族也以文行爲世氈而翁能謹守無替隱居行義又以獎後進爲已任創建寒泉塾爲子弟肄業之所繼而營小築爲晩年頣養之計未果而沒世此正覺君之所以明發不寐追成其遺志也其可謂肯構肯堂者乎亭凡六間中爲堂而兩夾爲室環之垣而門於正面凉燠出入之位備矣以..

진전면 양촌리 개양마을 초계 변씨 거연정 居然亭

진전면은 갈 때마다 느끼지만 전통마을의 형식을 잘 갖춘 곳이며 사람의 도리를 버리지 않고 지키려는 정신이 살아 있는 박물관 같은 지역이다. 마을 곳곳에 전통형식의 재실과 사당 및 정려와 포창비를 세웠으며 도심에서는 사라진 노거수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우연히 시작한 노거수의 정리가 거의 끝나는 시점이라 창원시에 산재한 비문들을 찾아보면서 함께 재·루·정(齋·樓·亭) 등을 살피고 있다. 한문을 많이 몰라 어려움이 있지만 모르니까 공부하는 것도 점점 재미를 더한다. 거연정(居然亭)은 변상용(卞相瑢)이 자신의 선조를 그리며 지은 정자로 창원시 진전면 개양길 9-24에 위치한다. 개양마을은 양촌리에 속해 있지만 양촌리와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으며 마을규모는 작다. 이 마을의 가장 위쪽 산자락에 위치한 거연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