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진전면 평암리 상평 중말마을 김유인효행기적비 2019.7.2 평암리 상평 중말마을의 김씨부인 효행기적비 진전면 평암리 947-1번지는 평암로와 상평중말길이 만나는 지점의 길가에 위치하며 이곳에는 붉은벽돌로 담장을 하고 그 중앙에 『김유인효행기적비(金孺人孝行紀蹟碑)』를 세웠다. 김씨부인의 효행에 근거하여 근대에 세운 이 비석.. 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2019.07.06
창원 진전면 평암리 함안조씨 은봉재 隱鳳齋 2019.7.2 평암리 상평 음달마을 함안조씨 은봉재 진전면 평암리 705번지는 평암리 상평마을 음달에 위치한 함안조씨의 재실인 은봉재(隱鳳齋)가 있는 곳이다. 상평마을은 평암리의 좌측 편 가장 위쪽에 자리한 마을로 음달마을과 양달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 입구 우측 언덕에는 느티나.. 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2019.07.04
창원 북면 내곡리 김해김씨 원모재 遠慕齋 2019.2.1. 북면 내곡리 김해김씨 원모재 외부 모습 창원시 의창구 북면 내곡리 253번지에 위치한 김해김씨 원모재(遠慕齋)는 정면 3칸, 측면 2칸 구조이며, 사당인 상현사도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정문인 귀후문(歸厚門)은 정면 3칸, 측면 1칸이다. 원모재 동남쪽에는 담을 사이로 하여 벽계.. 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2019.07.01
북면 신촌리 창원황씨 추모재 追慕齋 2019.4.11북면 신촌리 창원황씨 추모재 입구 추모재 앞에 있는 첨정통정형제이공유허기념비(僉正通政兄弟二公遺墟記念碑) 僉正通政兄弟二公遺墟記念碑 僉正公 諱龍潑 字在天 號義窩 通政公 諱世潑 字在昊 號剛窩 性黃氏 其先昌原入 高麗侍中 諱忠俊 爲初祖自後嵬勳碩甫聯世赫烜入李氏 .. 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2019.06.28
북면 하천리 김녕김씨 삼사재 三斯齋 2019.6.25 창원 북면 하천리(대촌마을) 김녕김씨 삼사재 제목 : 삼사재(三斯齋) 소재지 : 경남 창원시 북면 하천리 341-1 좌표와 고도 : 해발 33m에 위치하고 「위도 35°22′05″N 경도 128°36′22″E」이다. 백촌 김문기(白村 金文起)의 후손이 창원으로 입향한 선조는 김운리(金雲漓)이다. 백촌의.. 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2019.06.25
창원시 모산리의 박문호·박해철 불망비 2019.4.30대산면 모산리 박문호 박해철 불망비 2019.4.30 모산리 박문호 영세불망비 창원시 대산면 모산리 247-22번지의 모산리 도로변에 위치한 2기의 불망비(不忘碑)는 박문호(朴文琥, 1833-1917. 12. 9)와 그의 아들 박해철(朴海徹, 1868~1934)의 공덕을 찬양하는 비석이다. 이 비가 위치한 높이는 해.. 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2019.06.24
낙동강 절경 품은 함안 광심정 기문 창녕군 길곡에서 바라 본 광심정 풍경 낙동강 기슭의 절애에 자리한 광심정(廣心亭)은 2009년에 한번 소개를 했지만 함안 칠원의 문화재를 소개하면서 넣은 내용이라 이번에 단독으로 광심정의 기문 해문을 기록해 본다. 당시의 풍광과 지금의 풍광에서 광심정 자체는 달라진 것이 없지만.. 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2019.06.23
합포구 수정리 풍천 노두칠 기념비 2014.12.31. 풍천 노두칠 기념비 합포구 구산로를 따라 가다 수정삼거리를 채 못가 합포구 구산면 구산로 525의 길옆에 『풍천노공두칠기념비(豐川盧公斗七紀念碑)』가 세워져 있다. 이 비의 내용을 살펴보니 1945년 일제강점기에 풍천 노두칠(盧斗七)이 검소함으로 본보기가 되고 재물을 사.. 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2019.06.20
함양 남계서원의 기문과 동·서재 2019.6.12 남계서원 동서재와 명성당 모습 ‘함양 남계서원 풍영루와 묘정비 해문’이라는 글을 이미 발행했고 여기서는 동·서재의 설명과 남계서원의 기문을 해석해 본다. 남계서원은 소수서원 다음으로 서원으로서 사액을 받은 서원으로 오랜 역사를 가진 의미 있는 서원이다. 현재 국.. 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2019.06.16
함양 남계서원 풍영루와 묘정비 해문 2019.6.12 함양 남계서원 풍경 '창원향토사연구회'의 6월 답사지이지만 잠시 스치듯 볼 수밖에 없었던 남계서원은 외삼문인 풍영루(風咏樓)는 올라보지도 못했고 그러다보니 기문(記文)도 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그때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풍영루(風咏樓) 앞에 세운 안내문도 읽.. 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2019.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