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향교와 뿌리 73

창원향교 풍화루기와 풍화루 영역

2016.11.7 창원향교 홍살문과 풍화루가 있는 풍경 창원향교가 청룡산(靑龍山) 아래에서 이곳 태을산(太乙山) 아래로 이건 한 후 가장 나중에 세운 건물이 출입문인 풍화루 이다. 풍화루를 창건한 임익창(任益昌) 부사는 경진년(庚辰年 : 1760) 2월에 부임하여 임오년(壬午年 : 1762) 7월에 교체 되었다. 손사익(孫思翼)선생이 소양(癸未年 : 1763) 3월에 쓴 풍화루기(風化樓記)는 기록만 있고 현판은 없다. 풍화루 앞에는 “부사임후익창풍화루창건비(府使任侯益昌風化樓剏建碑)”가 세워져 있으며 비문은 부사가 떠난 3년 후인 1765년 당시 삼도수군통제사가 지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2017.2.11. 창원향교 풍화루 風化樓記 於休遠哉 三代敎法 家有塾 黨有庠 州有序 國有學 無適非學而蓋所以 風化天下 試考..

창원향교 중수기와 명륜당 중수기 및 상량문 등

2014.10.8. 창원향교 명륜당 풍경-花階가 잘못되어 있을 때 모습 창원향교는 크게 제례 영역인 대성전과 동·서무, 교육 영역인 명륜당과 동·서재를 비롯하여 출입문인 홍살문과 풍화루가 있다. 그러나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5호로 지정이 된 곳은 제례 영역인 대성전 1동이며 보호구역은 5,025m² 중 지정구역은 221.4m²(약 67평)이다. 그러다 보니 명륜당과 풍화루가 문화재가 아닌 보호 건물로 남아 있어 품격이 떨어지는 모양새이다. 명륜당과 풍화루 역시 전통시대의 맥을 간직한 소중한 문화유산인데 홀대를 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따라서 옛 기문들을 살펴보면서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문화재 지정을 하여 품격에 걸맞은 위치를 찾아 줘야할 것이다. 20..

창원향교 대성전 연혁과 이건기 중수기 상량문 비문

창원시 의창구 의안로59번길 10에 위치한 창원향교(昌原鄕校) 대성전(大成殿)은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5호로 지정되었다. 창원향교는 조선시대 일읍일교(一邑一校)의 원칙에 따라 수령이 파견된 지역에 설치한 향교로 유교(儒敎) 교육기관이다. 창원 향교의 창건 연대에 대하여는 다양한 설이 제시되어 있으나 최초의 이건(移建)은 알기 어려우며 대체로 1705년(숙종31) 부사 신명식이 부의 서쪽 5.89㎞에 있는 내상리(內廂里 : 현 합성동 제2금강산 입구) 청룡산(靑龍山) 아래에 옮김으로써 시작되었다. 이후 1705년(숙종 31)에 이읍(移邑) 논의가 있어 부사 신명식(申命式)이 도감(都監) 박태윤(朴泰潤)과 함께 향교를 천주산(天柱山) 아래의 50보(步) 떨어진 곳으로 옮겼다. 창..

화천향교을 방문해 보니

2017.6.21화천향교 전경과 최성구 전교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상승로1길 48-16에 위치한 화천향교(華川鄕校 전교 최성구)는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02호로 지정된 곳이다. 화천향교는 파포천이 휘돌아 북한강과 만나는 터에 200m 남짓 높이의 산으로 둘러싼 배산임수(背山臨水), 전저후고(前低後高), 전착후관(前窄後寬)의 땅 모양을 갖춘 명당의 조건을 가진 곳이다. 조선초기에는 낭천향교(狼川鄕校)로 창건 되었으나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고, 1738년(영조 14)에 현감 김시민이 중건하고, 그 후 몇 차례 보수했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 1960년부터 대성전 공사를 시작으로 1975년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크지 않은 명륜당은 팔작지붕 기와집이고, 대성전은 단아한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건물..

울진향교의 소박함에서 인심까지 느껴진다.

2017.5.31 울진향교 표지석 2017년 5월 31일 성균관유도회창원지부 회원 90여명은 울진향교(전교 남경탁)를 방문해 봉심고유례(奉審 告由禮)를 올렸다. 성균관유도회창원지부는 해마다 타 향교를 방문하는 현장학습 교육을 통해 유림의 자질향상과 교류를 통한 화합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2017.5.31 울진향교 출입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59호로 지정이 된 울진향교(남경택 전교)는 1484년(성종 15) 읍내리 월변동에 처음 건립된 조선시대 교육기관이다. 1697년(숙종 23) 고성리 성저동으로 옮겼다가 1872년(고종 9) 현재의 위치인 울진읍 향교로 34-13으로 옮겨 왔다. 1920년 대성전이 중수되고 1950년 6·25전쟁으로 대성전과 동재를 제외한 기타 부속 건물이 모두 소실되는 아픔을 ..

창원향교 향안 및 고문서 일괄 유형문화재 제611호 지정

2014년 11월에 창원향교에서 소장하고 있던 향안 3종과 고문서 107점을 문화재로 등재하기 위해 경상남도에 신청을 하였고 2017년 4월 13일 “창원향교 향안 및 고문서 일괄”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11호로 지정을 받았다. 고문서 중 향안(鄕案 )은 조선시대에 향촌지배를 수행하던 사족들의 성명·본관·내력을 기록한 장부인데 이 향안이 발전하여 법전(法典)의 기틀이 된다. 완의(完議)는 종중(宗中)·가문(家門)·동중(洞中)·계(稧) 등에서 제사·묘위(墓位)·동중사(洞中事)·계 등에 관하여 의논하고 그 합의된 내용을 적어 서로 지킬 것을 약속하는 문서이다. 이 고문서들은 창원향교를 중심으로 일어난 다양한 창원지역의 역사를 기록한 문서로 500년의 역사를 담고 있다. 문서의 일부는 훼손된 부분도 있으며..

창원향교 전적류 문화재자료 제635호 지정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창원향교 전적류 창원향교는 지난 2015년 8월 소유하고 있던 창원향교 전적류(昌原鄕校 典籍類)를 경상남도에 문화재 등재를 위해 절차에 따라 자료를 재출했고 2017년 4월 13일자로 문화재자료 제635호로 지정 받았다. 이들 책은 총 9권이고, 제목은 광국지경록(光國志慶錄), 계고록(稽古錄), 계고록상(稽古錄上), 계고록중(稽古錄中), 윤음(綸音), 윤음 유경기(綸音 諭京畿), 윤음 유육도(綸音 諭六道), 윤음 유진읍綸音 諭賑邑), 탕감 윤음(蕩減 綸音) 등이다. 한문으로 기록한 윤음 같은 내용을 훈민정음으로 기록한 윤음 광국지경록(光國志慶錄)은 조선 선조 때의 종계변무(宗系辨誣) 완수를 축하하여 펴낸 시집이고, 계고록(稽古錄)은 사마광이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짓고 부족한 부분을 계..

창원 회원서원 병신년 향례봉행

昌原 檜原書院은 文穆公 寒岡 鄭逑先生(1534~1620)과 文正公 眉叟 許穆先生(1595~1682)의 도덕과 학행을 추모하기 위해 1642년(인조 12)에 創建하여 두 분의 位牌를 모신 곳으로 매년 음력 9월 中丁日에 서원의 회원 및 地方儒林들이 享禮를 奉行한다. 昌原 檜原書院의 출입문인 외삼문에는 上右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본체의 현판은 檜原書院이라 적었으며, 文穆公과 文正公의 위패를 모신 사당에는 敬德祠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10월 12일(음력 : 9월 중 丁日)에 창원 회원서원(원장 공수일)에서 창원의 덕망 있는 유림들이 모여 두 분의 영정과 위폐를 모시고 享禮를 奉行했다. 이날 초헌관은 趙徹顯 마산회원구청장, 아헌관 南相珣 유학, 종헌관 李東映 유학, 집례 許琮 유학, 축 趙萬濟 유학이 각..

추기석전대제 제관 廟司(묘사)의 분정과 역할

2016년 9월 2일 昌原鄕校(창원향교)에서는 조선초기부터 전해오는 秋期釋奠大祭(추기석전대제)를 지낸다. 이에 앞서 약 한달 전에 창원향교를 출입하는 儒生(유생)들 중 대표성을 띄고 있는 掌議(장의 : 오늘 날 학교의 반장 역할이라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하위 벼슬이다.)와 각 지회장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會議(회의)를 소집하여 祭官(제관)들을 천거한다. 이러한 절차를 통해 제관을 천거하고 결정하는 행위를 일러 爬定(파정)이라 한다. 파정을 통해 이루어진 제관들의 임무를 부여하는 행위를 執事分定(집사분정)이라 말하는데 제사를 지냄에 차질이 없도록 제관들 각자에게 역할을 부여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절차를 통해 모든 제관들이 정해지면 각자 제관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리는 통지문을 보내게 되는데 통지문을 담은..

창원향교 을미년 첫 망월례 분향

2015년 1월 5일 乙未年 焚香禮는 成均館 儒道會 昌原支部 鎭海支會 星照 朴泳煥會長(77세)이 獻官을 맡고 鎭海儒林들이 새해 첫 望月禮를 焚香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진해 유림들은 1915년 熊川鄕校가 폐쇄되어 창원향교로 통합 된 이후 지금까지 창원향교에 와서 예를 올리고 있다. 창원향교의 삭망례는 창원향교를 출입하는 장의들에 의해 진행해 왔지만 일반 유림들인 경우 향교에 방문할 기회가 공식적으로 1년에 한두번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보니 향교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는 경우가 있어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각 지회별로 순번을 정하여 돌아가면서 분향을 하게 되었다. 이날 분향을 마치고 창원향교 사무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중 진해지회 소속의 金成柱 儒林은 “웅천향교가 폐쇄 된지 올해가 100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