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 693

창원향교 - 창원시장 취임 고유례 봉행

2018.9.8 허성무 창원시장 창원향교에서 고유례 봉행 창원시 허성무시장이 9월 8일 14시 30분에 창원향교(전교 김혁래)에서 이번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18.06.13.)에 창원시장으로 당선 된 후 바쁜 일정으로 미루어 오던 고유례를 봉행했다. 이날 창원향교 장의 및 여성회원 40여명이 참석하고 허성무 창원시장의 의전을 위해 황진용 의창구청장 및 담당 공무원들이 참석했다. 허성무시장의 고유례 봉행을 위해 창원향교 김혁래 전교 및 수석장의들이 창원시 담당관과 협치를 하였고 이 과정에서 항원향교의 위상과 미래의 발전방향을 논의하는 시간도 가졌다. 고유례(告由禮)란 ‘국가나 개인이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선현들에게 그 이야기를 알리는 의식으로 전통시대부터 그 고을의 수령(지도자)은 향교 대성전에 ..

허성무 창원시장! 모르는 것은 모른다 말하는 용기

2018.9.3 허성무 창원시장 블로거 간담회를 하면서 10년 전 우연히 LED점자블록을 설치하면 법규를 어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도로상의 안전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10여년 동안 계속 해서 관심을 가지다 보니 안전의 원리를 나름 알게 되었고 이를 도로안전시설에 접목하다보니 남들보다 몇 가지를 앞서 알게 되어 줄기차게 잘못 설치된 안전시설을 창원시에 지적하게 하게 되었다. 이번에 창원시장으로 허성무 시장이 당선 되어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철학을 압축하여 내건 것이 “사람중심 새로운 창원”이란 표제이다. 따라서 이제까지 수없이 지적을 해온 안전시설에 대해 제안 책자를 만들어 시장과의 블로거 간담회 때 참고문건으로 제출을 했다. 블로거 간담회 때 「도로안전시설이 법률과 상관없이 계속해서 잘 못 설치되는 것..

창원시 허시장 달변은 좋으나 초보 티 난다.

2018년 9월 3일 허성무 창원시장과 블로거들의 간담회 모습 지난 9월 3일 창원시청 3층회의실에서 허성무 창원시장은 블로거들과의 간담회를 가졌다. 각자의 영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블로거들이 질문을 하고 허시장이 답을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대화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고 종편에서 단련된 허시장의 달변을 들을 수 있었다. 이 간담회에 참가해 3가지 질문을 했다. 첫 번째 질문은 「"성주수원지"의 물은 창원시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질문의 개요를 설명하자면 『창원시 천선동 562번지 일대에 위치한 『성주수원지』는 1955년 6월 진해읍에서 진해시로 승격하면서 대량의 식수원이 필요하자 1959년 7월에 착공하여 5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1964년 7월 완공했다. 당시 창원은 창원기..

오동동문화광장에서 만난 경찰과 경찰관

2018.8.25 오동동문화광장에서 공연 중인 舞禪무선무용단 내 어릴 적 흐릿한 기억 속에 순둥이 같았던 친구가 전통무용을 배워 무대에서 공연을 한다고 해서 오동동문화광장을 찾았다. 공연 몇 분 앞두고 비가 내려 걱정을 했는데 정작 공연 때는 비가 내리지 않아 즐겁게 구경을 하고 왔다. 2018.8.25 오동동문화광장에 세운 입간판 오동동문화광장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입간판과 펼침막이 광장 주위에 붙어 있다. 입간판(경찰관 집중 순찰구역)과 펼침막(경찰 집중 순찰구역)에 쓴 내용을 보면서 왜 경찰관(警察官,policeman)과 경찰(警察,police)이라는 용어가 동시에 등장 하는 지 의문이 들었다. 사람들은 우리글을 쓰면서 사소한 차이를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

창원시의 지랄

2008년 창원시는 해묵은 갈등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배심원 풀(pool) 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시장이 박완수 지금 의창구 국회의원이다. 이 배심원 풀(pool)은 창원시청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적으로 모집했고 공무원들이 자체 심사를 거쳐 위촉을 했다. 지금 기억나지 않지만 그러나 당시 무슨 문제가 있어 위촉장은 모두 개인별 우편으로 보냈다. 배심원 풀(pool)에 위촉된 사람들의 임기는 2년간이었다. 2년간 창원시는 많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배심원 풀(pool)을 소집하지 않았고 단 한 차례도 연락한 일이 없다. 한마디로 배심원 풀(pool)로 위촉만 하고 시민들을 쓰레기 취급을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갑자기 배심원 풀(pool) 제도를 이용하여 창원시의 갈등을 해소하겠다고 창원시가 배심..

창원향교 동·서재에 남긴 애틋한 옛 사연

창원향교는 성현의 뜻에 따라 인륜을 밝히고 풍속을 돈독히 하는 제례(祭禮)와 교육(敎育)의 공간이다. 크게 3영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성현(聖賢)에 대한 제사를 봉행하는 제향 기능을 주관하는 대성전(大成殿)과 동·서무(東·西廡)가 있고, 유생에게 유학(儒學)을 교육하는 교학 기능의 명륜당(明倫堂)과 동·서재(東·西齋)의 영역이 있으며, 지방의 문화 향상 등을 도모하고 풍속을 교화하는 사회 교화 기능을 함께 갖고 있는 풍화루(風化樓)의 영역이 있다. 조선시대의 성균관과 향교는 엄밀히 말해 불교나 기독교와 다른 내세관(來世觀)이 배제 된 교육과 통치의 수단이 함께하는 형태의 종교이다. 따라서 유생들은 성현의 뜻을 쫓아 성경을 배우고 자신을 수련하여 나라를 발전시키는 주역이 되고자 끊임없이 노력 했다. 향교에..

단절의 역사에 허덕이는 창원시에 제안

2017.9.27 창원향교 석전대제 아헌관 임무를 수행하는 허성무 현시장 창원시, 마산시, 진해시를 통합해야 한다고 시민의 뜻과는 상관없이 정치적 목적으로 주장하고 강제적으로 통합에는 성공했지만 갈등만 증폭시킨 현재 의창구 지역 국회의원 박완수씨나, 이왕 통합 되었으니 광역시 해야 한다고 수백억 혈세를 쓰고도 성공 못한 안상수씨는 한 번도 창원의 역사적 근거나 통합의 진짜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이 두 사람은 자신의 이익만 생각했지 이 도시는 왜 통합해야 하는지, 통합 이후에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아무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당시 한나라, 새누리당의 꼭두각시가 되어 창원시를 자신들의 출세에 이용만 했다. 이들이 만약 창원의 역사를 이해하고 통합해야하는 진짜 이유를 설명했더라면 지금의 폭삭 망한 창원시..

창원향교 풍화루기와 풍화루 영역

2016.11.7 창원향교 홍살문과 풍화루가 있는 풍경 창원향교가 청룡산(靑龍山) 아래에서 이곳 태을산(太乙山) 아래로 이건 한 후 가장 나중에 세운 건물이 출입문인 풍화루 이다. 풍화루를 창건한 임익창(任益昌) 부사는 경진년(庚辰年 : 1760) 2월에 부임하여 임오년(壬午年 : 1762) 7월에 교체 되었다. 손사익(孫思翼)선생이 소양(癸未年 : 1763) 3월에 쓴 풍화루기(風化樓記)는 기록만 있고 현판은 없다. 풍화루 앞에는 “부사임후익창풍화루창건비(府使任侯益昌風化樓剏建碑)”가 세워져 있으며 비문은 부사가 떠난 3년 후인 1765년 당시 삼도수군통제사가 지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2017.2.11. 창원향교 풍화루 風化樓記 於休遠哉 三代敎法 家有塾 黨有庠 州有序 國有學 無適非學而蓋所以 風化天下 試考..

창원향교 중수기와 명륜당 중수기 및 상량문 등

2014.10.8. 창원향교 명륜당 풍경-花階가 잘못되어 있을 때 모습 창원향교는 크게 제례 영역인 대성전과 동·서무, 교육 영역인 명륜당과 동·서재를 비롯하여 출입문인 홍살문과 풍화루가 있다. 그러나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5호로 지정이 된 곳은 제례 영역인 대성전 1동이며 보호구역은 5,025m² 중 지정구역은 221.4m²(약 67평)이다. 그러다 보니 명륜당과 풍화루가 문화재가 아닌 보호 건물로 남아 있어 품격이 떨어지는 모양새이다. 명륜당과 풍화루 역시 전통시대의 맥을 간직한 소중한 문화유산인데 홀대를 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따라서 옛 기문들을 살펴보면서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문화재 지정을 하여 품격에 걸맞은 위치를 찾아 줘야할 것이다. 20..

창원향교 대성전 연혁과 이건기 중수기 상량문 비문

창원시 의창구 의안로59번길 10에 위치한 창원향교(昌原鄕校) 대성전(大成殿)은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5호로 지정되었다. 창원향교는 조선시대 일읍일교(一邑一校)의 원칙에 따라 수령이 파견된 지역에 설치한 향교로 유교(儒敎) 교육기관이다. 창원 향교의 창건 연대에 대하여는 다양한 설이 제시되어 있으나 최초의 이건(移建)은 알기 어려우며 대체로 1705년(숙종31) 부사 신명식이 부의 서쪽 5.89㎞에 있는 내상리(內廂里 : 현 합성동 제2금강산 입구) 청룡산(靑龍山) 아래에 옮김으로써 시작되었다. 이후 1705년(숙종 31)에 이읍(移邑) 논의가 있어 부사 신명식(申命式)이 도감(都監) 박태윤(朴泰潤)과 함께 향교를 천주산(天柱山) 아래의 50보(步) 떨어진 곳으로 옮겼다.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