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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의 풍류 집청정(集淸亭)

천부인권 2026. 5. 15. 06:39

2026.5.12.울산 반구대-집청정(集淸亭)

 

집청정(集淸亭)은 경주최씨 정무공파(貞武公派) 파조 청백리 병조판서 최진립(崔震立) 장군의 증손 운암(雲巖) 최신기(崔信基;1673~1737)가 세운 정자로 맑음을 모은다란 뜻으로 오른쪽에 청류헌(聽流軒_물 흐르는 소리를 듣다), 왼쪽에는 대치루(對峙樓_서로 마주함)를 두고 있다.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謙齋 鄭敾)반구와 그의 손자 정황(鄭榥)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언양반구대에도 집청정으로 보이는 정자가 묘사되어 있다.

집청정(集淸亭)은 반구대를 찾는 시인 묵객의 소통 장소이며, 조선 후기부터 구한말까지 284명의 시인이 400여 편의 시를 남겼다. 그 작품들을 운암의 후손 최준식(崔俊植)이 정리하여 한권의 책<集淸亭詩集>으로 묶었다. 집청정시집에는 숙종과 영·정조 때의 문신, 학자, 경상도관찰사, 인근의 수령들이 이름을 올렸으며, 숙종 때의 문신 권해(權瑎)의 반구제영(盤龜題詠)도 실려있다.

 

2026.5.12.울산 반구대-집청정(集淸亭)
2026.5.12.울산 반구대-집청정(集淸亭)
2026.5.12.울산 반구대-집청정(集淸亭)_대치루(對峙樓 )
2026.5.12.울산 반구대-집청정(集淸亭)_청류헌(聽流軒 )
次集淸亭韻(차집청정운)-집청정의 운을 빌려 짓다

 

次集淸亭韻 집청정의 운을 빌려 짓다

山何秀麗石何奇 산은 어찌 이리 수려하고 돌은 어찌 기이한가

爭似蓮華伏似龜 다투듯 연꽃은 피어 있고 엎드린 거북 형상이네

圃老昔年曾棋杖 포로(圃老께서 옛날에 지팡이 짚고 거닐던 곳인데

仙翁當日不收棋 신선(仙翁)은 그날 바둑판을 거두지 않았구려²

屛粧錦繡花開後 병풍처럼 수놓인 비단은 꽃이 핀 뒤의 모습이고

堅列瑷瑶月出時 구슬³을 벌여 놓은 듯한 장관은 달이 뜰 때로다

更有淸溪嗚憂玉 더구나 맑은 시냇물은 옥 굴러가는 소리를 내니⁴⁾

夕陽傾聽下來遅 석양 아래 귀 기울여 듣느라 내려가기 더디구나

進士 柳宜健 진사 유의건

 

[주석]

포로(圃老: 고려 말의 충신 포은 정몽주(鄭夢周) 선생을 지칭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가 머물렀거나 인연이 있는 장소임을 암시하며 정자의 유서 깊음을 강조합니다.

선옹당일불수기(仙翁當日不收棋: 신선들이 바둑을 두다가 그대로 두고 떠났다는 표현으로, 이곳이 속세를 벗어난 선계(仙界)와 같은 분위기임을 나타냅니다.

애요(瑷瑶: 아름다운 옥을 의미합니다. 달빛이 비치는 정자 주변의 바위나 풍경을 보석에 비유한 것입니다.

명옥(嗚玉)⁴⁾: 시냇물 소리를 옥이 부딪히는 맑은 소리에 비유하여 청각적인 즐거움을 더했습니다.

 

名區歷覽此爲奇 명승지를 두루 돌아보니 이곳이 더욱 기이하고,

數群山川泛一龜 뭇 산천이 한 마리 거북을 띄운 듯 펼쳐졌네.

圃老遺芬詩在璧 포은(정몽주) 선생의 남긴 향기 바위에 시로 남아 있고

仙翁舊跡石留碁 선옹(仙翁)의 옛 자취는 바둑 두던 돌에 남아 있네.

遙飛笛韻孤雲際 피리 소리는 아득히 날아 외로운 구름 사이로 흐르고

高枕灘聲細雨時 가랑비 내릴 제 높은 베개에 누워 여울물 소리 듣노라

半日松坛傾小酌 반나절 송단(松壇)에서 작은 술잔 기울이니

蕭蕭嗚馬出遅遅 쓸쓸히 우는 말소리 속에 더디게 길을 나서네.

進士 李俊民 진사 이준민

 

次集淸亭韻(차집청정운)-집청정의 운을 빌려 짓다

 

次集淸亭韻 집청정의 운을 빌려 짓다

特地風烟最此間 특히 바람과 안개는 이곳이 최고인데

洞天幽邃盡環山 동천(洞天)이 깊숙하여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네.

龜盤老石當危檻 거북이 엎드린 늙은 바위는 높은 난간을 막아서고

龍臥深潭噴駭灣 용이 누운 깊은 못은 놀라운 물굽이에 뿜어지네.

裊裊竿絲垂月引 흔들이는 낚싯줄은 달빛 속에 드리웠다 당기는데

悠悠身世伴雲閑 느긋한 신세(身世)는 구름을 벗하여 한가롭네.

列仙淸福君能享 뭇 신선들의 청한(淸閑)한 복을 그대가 누릴 수 있으니

霞外高標我欲攀 속세를 벗어난 높은 풍도(風度)를 내가 따르고 싶네.

進士 李德標 진사 이덕표

 

이덕표(李德標);

1664(현종 5)~1745(영조 21), 조선 후기의 문인으로 자()는 정칙(正則). 본관은 여주(驪州)이다.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5대손으로, 1699(숙종 25) 식년시(式年試)에서 진사(進士) 3등으로 합격하고, 1722(경종 2)에 경상도·전라도·충청도의 유생들이 신사년(辛巳年)의 옥사(獄事)를 신원(伸寃)을 청한 변신옥소(卞辛獄疏)의 소두(疏頭)가 되었다가 웅천(熊川)으로 유배되었다. 저서로 우와집(寓窩集)이 있다.

 

高軒掛在翠微間 높은 처마 푸른 산 중턱에 걸려 있고

下有鳴溪上有山 아래에는 시냇물 소리, 위에는 산이 있네

兩腋天風吹鶴氅 두 겨드랑이에 부는 하늘 바람은 학의 깃털 흔들고

一簷明月照龜灣 처마에 걸린 밝은 달은 거북 물굽이을 비추누나

仙人自古樓居好 예부터 신선은 누각에 사는 것이 좋다 하더니

病客如今俗慮閑 병든 나그네 된 지금에야 세속의 근심이 한가해지네

寄語沙鷗休負約 갈매기에게 전하노니, 기약한 바를 저버리지 마라하니

他時扶杖更追攀 훗날 지팡이 짚고 다시금 이곳을 찾으리니

埍叟 鄭萬陽 현수 정만양

 

정만양(鄭萬陽);

1664(현종 5)~1730(영조 6).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오천(烏川). 자는 개춘(皆春), 호는 훈수(塤叟). 영천 출신. 조부 사연(時淵)과 이현일(李玄逸)의 문하에서 아우 규양(葵陽)과 함께 수학하여 학문에 전념하였고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았다. 1724(경종 4)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1728(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아우 규양과 함께 경상도 일대에 격문을 돌려 향병 수백 명을 모아 의병장에 추대되었으나 관군이 난을 평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해산하였다. 그 후 이남산(尼南山) 밑에 육유재(六有齋진수재(進修齋완장(玩掌亭태고와(太古窩) 등을 짓고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저서로 형제의 공동 문집인 완지문집(玩芝文集)등이 있다.

 

2026.5.12.울산 반구대-집청정(集淸亭)_상량문
2026.5.12.울산 반구대-집청정(集淸亭)_중건기
근차집청정운(謹次集淸亭韻)-집청정(集淸亭)의 운을 삼가 차운하다

 

謹次集淸亭韻 집청정(集淸亭)의 운을 삼가 차운하다

吾祖當年卜此奇 우리 조상께서 그 해에 이 기이한 곳을 점찍으셨으니

岩如槊戟石如龜 바위는 삐죽삐죽 창을 세운 듯하고 돌은 거북 형상 같구나

白雲影護三贒社 흰 구름 그림자는 세 어진 이(三賢)의 사당을 감싸 보호하고

流水聲涵四皓棋 흐르는 물소리는 네 신선(四皓)이 바둑 두는 소리를 머금었네.

瓊月朣朧依舊日 옥 같은 달빛은 예나 지금이나 희미하게 비치는데

儒風彬蔚已前時 성대했던 유학의 기풍은 이미 앞선 시대의 일이로다.

滄桑往事憑誰問 세상이 변해버린 지난 일을 누구에게 물어보리오

百感弸中夢寐遲 온갖 감회가 가슴 속에 가득 차 꿈속에서도 잠 이루기 어렵네

六世孫 崔讚壽 謹撰 6세손 최찬수(崔讚壽) 삼가 지음

 

先祖起亭面面奇 선조께서 정자를 세우시니 곳곳의 면면이 기이하고

山如翩鳳石蹲龜 산은 펄펄 나는 봉황 같고 바위는 웅크린 거북 같네

之玄水步停爲海 (() 자 모양으로 굽이치던 물걸음 멈추어 바다를 이루고

平鋪砂紋列者碁 평평하게 깔린 모래 문양은 바둑알을 벌여 놓은 듯하구나

大界荒塵斯淨界 온 세상이 거친 먼지투성이여도 이곳만은 깨끗한 경계(정계)이니

四時何日匪良時 사계절 어느 날인들 좋은 때가 아니겠는가

今吾作主還多愧 이제 내가 주인이 되고 보니 도리어 부끄러움이 많아

追慕前徽繼述遲 앞선 덕택을 추모하며 계승함이 늦어짐을 한탄하노라

九世孫 崔俊植 謹撰 9세손 최준식(崔俊植) 삼가 지음

 

次集淸亭韻(차집청정운)-집청정의 운을 빌려 짓다

 

暮入盤龜洞 저녁에 반구대 골짜기에 들어가니

翼然有小亭 날아갈 듯한 작은 정자가 있네.

憑欄明月出 난간에 기대니 밝은 달이 뜨는데

山色望中靑 산색(山色)이 시야(視野) 속에 푸르네.

進士 孫景杰 진사 손경걸

 

손경걸(孫景杰);

생평(生平) 및 생몰년(生沒年)은 미상, ()는 대지(大之), ()는 설와(雪窩),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1721(경종 원년)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再訪盤龜洞 다시 반구대 골짜기를 찾으니

依然舊小亭 옛날의 작은 정자가 여전(如前)하네.

仙區無限好 신선 세계가 한없이 좋은데

雲山白又靑 구름과 산이 희고 또 푸르네.

進士 申漢雲 진사 신한운

 

신한운(申漢雲);

1682(숙종8)~?. 조선 후기의 문인으로 1727(영조 3) 증광시(增廣試)에서 진사(進士) 2등으로 합격한 사실이 사마방목(司馬榜目)에 확인된다.

 

沿溪步步路 시내 따라 한 걸음씩 길을 가다가,

牽興晩登亭 흥에 겨워 늦은 저녁 정자에 오르네.

石上舍盃去 바위 위에서 술잔을 내려놓고 가려 하니,

千峰滿意靑 수많은 봉우리가 마음껏 푸르구나.

是菴 任華世 시암 임화세

 

임화세(任華世);

1675(숙종 1)~1731(영조 7).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천(豊川)이고 자()는 실혜(實兮), ()는 시옹(是翁시암(是庵)으로 경주 출신이며, 1699(숙종 25) 식년시(式年試)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 예조정랑(禮曹正郞) 등을 역임하였으며, 저서로 시암집(是庵集)이 있다.

 

造物終難秘 조물주(造物主)가 끝내 숨기기 어려워서

盤龜此有亭 반구대에 이 정자를 존재하게 하였네.

祇應看過後 아마 보고 지나간 뒤에는

山色夢中靑 산색(山色)이 꿈속에서도 푸르겠네.

 

손덕승(孫德升);

1659(효종 10, 현종 즉위년)~1725(숙종 10).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현수(玄叟), ()는 매호(梅湖)이고,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684(숙종 10) 식년시(式年試)에서 병과(丙科) 3등으로 급제하여 병조좌랑(兵曹佐郞)을 거쳐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임명되었으나 이후 낙향하여 학문에 몰두하다 1724(경종 4)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水廻山抱水 물은 산을 휘돌고 산은 물을 감싸는데,

中有一溪亭 그 가운데 시내 위엔 정자 하나가 있네.

吟鞭頻指點 시인의 말채찍이 자주 가리키는 곳에,

石白又山靑 바위는 희고 산은 또한 푸르구나.

進士 李敏中 진사 이민중

 

이민중(李敏中);

1694(숙종 20)~?. 조선 후기의 문인으로 1719(숙종 45) 증광시(增廣試)에서 진사(進士) 3등으로 합격한 사실이 사마방목(司馬榜目)에 확인된다.

 

次集淸亭韻(차집청정운)-집청정의 운을 빌려 짓다

 

次集淸亭韻 집청정의 운을 빌려 짓다

從古靈區稱絶奇 예로부터 신령한 지역이 매우 기이하다고 일컫거늘,

卜居何用問蓍龜 거처를 정하면서 어찌 시귀(蓍龜)에게 묻는가?

生涯自足魚兼菜 생애는 스스로 물고기와 채소가 풍족함에 만족하고,

閑興惟消酒又碁 한가로운 흥취는 오직 술과 바둑으로 푸네.

騷墨詩情同觸處 소인(騷人)과 묵객(墨客)의 시정(詩情)은 접촉하는 곳마다 같고,

溪山風景各隨時 시내와 산의 풍경은 때에 따라 각각이네.

回頭世路紛澆濁 머리를 돌리니 세상길은 흐린 물을 대느라 어지러운데,

却羨春窓詠日遲 문득 봄 창가에서 저물도록 읊조리는 모습을 부러워하네.

再從 崔天基 재종 최천기

 

최천기(崔天基);

1664(현종 5)~1719(숙종 45), 조선 후기의 문인으로 집청정(集淸亭)을 건립한 운암(雲巖) 최신기(崔信基,1673~1737)의 재종형(再從兄)이다. 자는 명시(命始)이다.

 

休說金剛萬瀑奇 금강산 만폭동의 기이함을 말하지 마라

岩石化灵龜 응당 바위가 신령한 거북으로 변했음을 알겠도다

樽前翠滴千尋壁 술잔 앞에는 천 길 절벽의 푸른 빛이 맺혀 있고

松下寒鋪百子棋 소나무 아래에는 차가운 바둑알들이 펼쳐져 있네.

秋閣夢淸來月夜 가을 누각에 꿈길 맑으니 달밤이 찾아오고

玉泉兩歇釣魚時 옥 같은 샘물 소리 잦아들 제 낚시질할 때로다

溪山重到着無厭 시내와 산을 거듭 찾아와도 전혀 싫증이 나지 않으니.

欸叚何嫌出洞遲 뱃노래 소리 속에 골짜기 나감이 늦어짐을 어찌 탓하리오.

三從孫 崔宗謙 삼종손 최종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