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 1264

진전면 양촌리 변씨 삼강려

옛 국도2호를 따라 진주로 향하다보면 ‘양촌온천’이라 말하는 동산리가 나온다. 진전면 동산리에서 양촌마을로 곧장 가면 도로 옆에 잘 정돈된 ‘양촌리 변씨 삼강려(良村里 卞氏 三綱閭)’가 보인다. 이곳의 지번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촌리 235-1이다. 계단을 올라 삼강려각이 있는 곳으로 가다보면 삼강려에 대한 안내문이 금석문에 새겼다. 그내용은 아래와 같다. 『오원(吾元) 변연수(卞延壽 1538~1592)장군은 조선 중종33년(1538년)에 이곳에서 태어나 무과에 급제하고 훈련주부의 벼슬에 올랐으나 휴관으로 향리에서 쉬고 있을 때 임진왜란을 맞이하게 되자 아들 변립(卞岦)과 함께 “신하된 자 몸을 던질 때로다.” 이르고 즉각 격문을 내어 원근에서 의병을 모아 연해의 출몰 왜적을 격퇴하고 이순신 장군..

북면 외산리 달성서씨 영모재 永慕齋

의창구 북면 외산리 1054-3은 달성서씨의 후손들이 묘제를 지내기 위해 건축한 재실(齋室)이 있다. 이 재실은 대문채와 본채로 구성 되어 있는데 대문채에는 여견문(如見門)이라는 편액이 달려 있다. 대문채는 대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창고가 마련되어 있다. 대문채를 들어서면 정면 4칸, 측면 2칸인 영모재(永慕齋)라는 편액을 단 재실이 나온다. 팔작지붕에 일본식 기와를 얻었고, 지붕은 비가 샜는지 에폭시 접착제를 칠하여 허름한 모습이다. 서까래가 썩었는지 지붕의 모양도 약간 변형 되어 있어 시대에 따라 퇴락해가는 전통문화의 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이런 건물이 제사 또는 모사를 지낼 때만 사용되고 평소에는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런 집들은 전국적으로 네트웍크를 결성..

합천 문림리 호연정 浩然亭

2017.4.16. 합천 문림리 호연정 은행나무와 담장 율곡면사무소 지명유래에 의하면 『문림리는 조선시대 합천군 천곡면 지역으로 민갓,문갓 또는 문림이라 불렀는데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시 하천동(下泉洞)일부를 병합하여 율곡면으로 편입되었다. 그 후 주세붕(周世鵬)이 벼슬에 진출할 때 중종께서 출생지를 하문할 때 민갓이라 하니 중종이 선비가 숲같이 많이 배출 하라는 뜻으로 문림(文林)으로 동명을 하사 하였다고 한다. 일제 침략 시와 광복 후 1959년 7월까지 율곡면 면소재지로 면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며, 1.2구로 구성된 상주주씨 집성촌이다.』고 한다. 2017.4.16. 호연정. 비각. 세덕사가 있는 풍경 합천군 율곡면 문림리 224-1번지는 황강이 굽이쳐 동으로 흘러가는 강변에 위치한 문림..

의령군 미연서원을 이의정이라 부르는 이유

의령군 대의면 중촌리 765-1번지는 모의로와 중촌마을로 들어가는 모의로3길이 만나는 삼거리 도로변으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585호”가 된 미연서원(嵋淵書院)과 1979년 12월 29일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82호”로 지정된 미수기언책판(眉叟記言冊板)이 있던 곳이다. 의령군 모의곡 중촌마을 입구에 위치한 미연서원은 미수(眉眉) 허목(許穆, 1595~1682)을 추모하기 위하여 1825년(순조 25)에 윗마을 행정리에서 창건했다. 그 후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명으로 훼철되었다가 45년 후 1901년 현재의 자리에 이의정(二宜亭)과 영당(影堂)을 지었으며, 1975년에 지금 모습의 서원을 복원하였다. 1901년 이의정(二宜亭) 건립 당시 이의정의 기와를 창녕군 지역에서 생산한 것이라 창녕군민..

창녕 술정리 진양하씨 초가(경상남도 중요민속자료 제10호)

2009.10.14. 억새로 지붕을 이은 술정리 진양하씨 외삼문 초가 창녕읍 술정리 29번지에 위치한 창녕 술정리 진양하씨초가(昌寧 述亭里 晉陽河氏草家)는 1968년 11월 25일 중요민속자료 제10호로 지정된 건축물 문화재이다. 국보 제34호인 “창녕 술정리 동삼층석탑”에서 북쪽으로 80m 떨어진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