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남계서원 풍영루와 묘정비 해문 2019.6.12 함양 남계서원 풍경 '창원향토사연구회'의 6월 답사지이지만 잠시 스치듯 볼 수밖에 없었던 남계서원은 외삼문인 풍영루(風咏樓)는 올라보지도 못했고 그러다보니 기문(記文)도 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그때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풍영루(風咏樓) 앞에 세운 안내문도 읽.. 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2019.06.15
의창구 동정동 김녕김씨 김업백의 묘비 2019.5.10 천주산 입구에서 본 김업백 묘 의창구 동정동 산 100번지는 천주산의 남동쪽 산 가장자리로 창원북면 굴현고개에서 내려오는 정렬대로와 인접해 있는 곳이다. 의창구 정렬대로 119의 GS셀프주유소에서 서쪽으로 190m 떨어진 산야에 김녕김씨(金寧金氏) 처사 김업백(處士 金業白)의 .. 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2019.05.13
대산면 유등리 정상대 전사 불망비 3019.4.30 대산면 유등리 정상대 전사비를 마을방향에서 본 풍경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유등리 142-1번지는 6·25전쟁 당시 젊은 나이로 전사한 『정상대 전사 불망지비(鄭相大 戰死 不忘之碑)』가 서 있는 곳으로 해발 높이가 9m이며 「위도 35°20′43″N 경도 128°45′01″E」이다. 이 비석은 .. 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2019.04.30
북면 신촌리 공원률 공적비 2019.4.20 북면 신촌리 공원률 공적비 『창원 신촌리 공원률 공덕비(昌原 新村里 孔元律 功績碑)』가 위치한 곳은 의창구 북면 신촌리 603-5번지의 북면파출소의 한켠에 천주로를 접하여 마주하고 있다. 이 비는 화강암의 비대석 위에 오석의 비신이 있고 가첨석을 얻었다. 동쪽을 바라보는 .. 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2019.04.21
북면 무곡리 박수석 송덕비 2019.4.16 창원 북면 무곡리 박수석 송덕비 북면 신동리에서 내곡리로 가는 갈곡고개의 천주로(1045번 지방도로) 변인 의창구 북면 무곡리 87-2번지는 비의 전면에 사인박수석송덕비(士人朴水錫頌德碑)라고 새긴 『창원 무곡리 박수석 송덕비(昌原 茂谷里 朴水錫 頌德碑)』가 위치한 곳이다. .. 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2019.04.20
북면 고암리 이영분 제단비-성주이씨 2019.4.11 북면 고암리 성주이씨 용산재 모습 2019.4.11 북면 성주이씨 용산재 뒷문 이필문 2019.4.11 용산재 뒤뜰에 세운 이영분 제단비 모습 북면(北面) 고암리(高岩里) 510번지는 성주이씨(星州李氏) 문중의 재실 용산재(龍山齋)가 위치하는 곳이다. 『북면 고암리 성주 이영분 제단비(北面 高岩.. 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2019.04.14
북면 신촌리 황종락 유적비 2019.4.12. 정이품 창원 황공 유적비 전경 2019.4.12. 정이품 창원 황공 유적비 풍경 창원시 의창구 북면 신촌리 643번지에는 창원황씨로 북면 신촌리 황종락(黃鍾洛)의 묘갈명(墓碣銘)을 적은 비석이 있다. 북면의 주산인 마금산(馬金山 280m)의 남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이곳은 해발 높이가 50m이.. 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2019.04.13
북면 외감리 미수허선생유지비 2019.4.8. 북면 외감리 미수 허목의 유적비가 있는 풍경 천주산 진달래 축제는 끝났어도 천주산(天柱山 : 638.8m) 정상부에 무리지어 핀 진달래꽃군락은 지금이 절정이라 많은 등산객들이 줄을 지어 산행을 하고 있다. 벚꽃은 끝물이라 꽃잎이 바람을 따라 흩날리고 미수허선생(眉叟許先生) .. 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2019.04.09
북면 하천리 손기성 혜덕 불망비 2019.4.4. 북면 하천리 안신천마을 입구에 있는 손기성 불망비각 『前洪陵參奉孫基晟惠德不忘碑(전홍릉참봉손기성혜덕불망비)』가 위치한 곳은 천주로가 시작되는 의창구 북면 하천리 159에 위치하며, 이곳의 해발 높이는 13m이며 「위도 35°22′23″N 경도 128°36′52″E」이다. 천마산의 끝.. 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2019.04.05
북면 하천리 애국지사 김진훈 묘 2019.4.1 북면 하천리 애국지사 김진훈 묘 모습 꽃이 핀 듯 아름다운 나이 22세 청춘이 조국광복을 위해 신명을 받치다 왜구(倭寇)의 모진 고문으로 중병을 얻어 사경을 헤매다 보석되었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광복의 그날을 2달 앞둔 1945년 6월 23일에 결국 순국했다. 그의 이름은 김진훈(金鎭.. 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2019.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