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 1263

성균관 비천당 丕闡堂

비천당丕闡堂은 대사성 민정중閔鼎重의 건의로 1664년 건립된 성균관의 별당으로 명륜당과 같이 재생齋生들의 학습장소 또는 임금이 성균관에 친림親臨하여 과거를 시행할 때 시험장소로 사용되던 곳이다. 1661년(현종 2) 도성 안에 있던 인수원仁壽院·자수원慈壽院 등 두 사찰을 훼철하고, 우참찬 송준길宋浚吉의 제안으로 그 재목을 북학北學의 진흥사업에 사용하려 하였으나 성사되지 못하고 비천당이 되었다. 비천당丕闡堂이라는 이름은 주자朱子가 성인聖人을 찬贊한 글 중 ‘비천대유丕闡大猷’라는 글귀에서 인용된 것이다. 丕闡堂記 上之二年辛丑命地部禁國內僧尼 大臣以猝處無漸爲言 上曰 然然則先罷京裏兩尼院 以建北學於 是有司之臣 奔走奉行 惟北學之建 以年侵而有待焉 癸卯九月大司成臣閔鼎重啓曰 北學旣未易設而 兩院材尼擯於無用請就太學 以修齋舍之..

성균관 대성전과 동서무 대성전상량문 大成殿上樑文

大成殿上樑文 天未喪斯文。蔚啓邦家之再造。道不墜於地。聿見聖廟之重新。美哉宏規。猗歟盛事。恭惟我朝。當聖祖定鼎之日。首建學宮。及太宗纂祚之初。增新廟宇。坊名崇敎里號興德。占城東之別區。右連華岳左拱駱山。鍾漢陽之秀氣。祀典大備於列聖。祠制丕闡於累朝。逮我聖上。躬精一之傳。任君師之責。橫經問道。屢降汾水之鑾。釋菜臨雍。頻屈峒山之駕。春秋之享朔望之奠。式禮罔愆。俎豆之儀金石之音。有秩斯格。流誦聲於璧水。煽文風於環林。不幸邦運之迍邅。遽見島夷之猖獗。百年宗社之慘。尙忍言哉。三韓文物之休。吁其盡矣。嗟我聖廟之有侐。亦被兵火之俱焚。黌舍荒蕪。寂寞茂草之域。廟貌顚倒。凄涼灰燼之墟。行途悲嗟。士林沾灑。道未嘗一日亡也。豈容斬伐消鑠而使之無。學所以三代共之。宜其修擧振作之不可緩。於是公私協力。遠近齊聲。或倒家財而效誠。或捐官廩而補役。爰因舊而謀始。乃鳩材而僝功。新甫之柏徂倈之松。若鬼輸而神運。公輸之巧魯..

성균관 향관청 享官廳

향관청享官廳은 1474년 대사성 성현(成俔)이 경연 때 임금께 아뢰어 창건한 건물로 문묘(文廟) 향사(享祀) 때 헌관(獻官) 및 제집사(諸執事)들이 거처하며 심신을 청재(淸齋)하는 장소이다. 당시 뜰 아래에 동서월랑(東西月廊)이 있었으며, 그 아래로 포주(庖廚)가 있었다. 1966년에 파괴된 동서월랑과 포주는 1986년 문화재관리국의 보조로 동서월랑만 중건되어 전한다. 享官廳記-洪貴達 成均館。古無有享官廳。前大司成成公俔。爲特進官。嘗於經筵啓曰。國朝禮先聖先師。歲用春秋之仲月。用朔望享祀惟謹。顧惟獻官諸執事淸齋之無其所也。當祭時。率假寓於東西齋。其齋之學生亦執事者。面無所容。乃移寓於館奴之家。有乖潔淨禋祀之義。乞於隙地。別構一廳。以爲享官齋所。上曰可。其與繕工提調。相地經營之。於是繕工提調臣韓致亨鄭文炯,同知館事廣川君李克增曁臣成俔。乃相正..

성균관 명륜당의 명륜당기와 명륜당상량문 明倫堂上樑文

성균관 명륜당 대청 위에는 많은 편액들이 달려있다. 그 중에서 명륜당을 설립한 이유를 담은 명륜당기明倫堂記가 있어 먼저 소개를 하고 편액으로 남지는 않았지만 명륜당상량문明倫堂上樑文 역시 글로 남아 있어 명륜당의 역사를 전하고 있다. 명륜당에 남은 편액들은 당대 최고의 경지에 오른 문장과 글씨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성균관 방문 때마다 하나씩 읽어 보기도 하지만 능력의 부재로 항상 아쉬움을 뒤로하고 왔다. 지금이라도 살펴보고 공부할 기회를 가진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고전원문-무명자집-無名子集 詩稿 册二 / 泮中雜詠。二百二十首】 에는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다. 明倫堂後岡,有萬松蒼欝,世呼“碧松亭”。其下卽明倫堂,後壁上揭三箇金字,是朱子筆。前簷又揭朱之蕃墨字,而詩不及之 명륜당(明倫堂) 뒤의 언..

성균관 명륜당 영역의 존경각과 육일각

성균관 명륜당明倫堂의 영역 내에 있는 존경각尊經閣과 육일각六一閣은 명륜당의 좌측 뒤쪽에 있는 건물이다. 존경각尊經閣은 책을 보관했던 서고였고 육일각六一閣은 대사례(大射禮)에 사용하던 궁시(弓矢)·웅후(熊侯)·미후(麋侯) 등을 보관하는 전각이다. 두 건물 다 문이 잠겨있어 내부는 구경을 할 수 없었고 존경각기尊經閣記는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찾았다. 【고전원문-무명자집-無名子集 詩稿 册二 / 詩】 에는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다. 尊經閣在明倫堂後,貯群書,使一吏掌之,諸生常借讀。今則日漸亡失,層架殆空云。 존경각(尊經閣)은 명륜당 뒤에 있는데 많은 책을 소장하고 관리 한 사람을 두어 관리하게 하였다. 유생들이 늘 여기에서 책을 빌려 읽었다. 지금은 장서(藏書)가 나날이 망실되어 층층의 서가가 거의 비었다고 한다. 尊經閣..

성균관 명륜당에 걸린 어제태학은배시 御製太學恩杯詩

조선의 국운과 함께 그 생명력은 잃고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옛 기억의 저편을 아련히 전하는 명륜당明倫堂은 우리나라의 슬픈 사연인 듯 꿈과 미래를 내려놓고 건물만 지금에 전한다. 삼성에서 운영하는 성균관 대학이 있기는 하지만 그 맥을 전했다 말하기 힘들다. 옛날 시골의 선비가 이곳에 들어가려면 지금의 서울대학보다 힘들었고 소위 난다긴다하는 천재들이 머리를 맞대고 공부를 했던 치열한 출세의 전쟁터였고 단지 입학을 했다는 것으로도 벼슬이 주어진 성균관의 위용은 찾을 길 없다. 빛바랜 명륜당의 편액 뒤 대들보에 걸려 있는 가장 크기가 큰 편액은 『어제태학은배시御製太學恩杯詩』 편액인데 몇 번의 방문에도 그 전문을 옮기고 해문을 전달할 생각 조차 못했다. 이번 방문을 통해 하나씩 성균成均館 전체의 건물에 대해 아는..

진북면 정곡 김해김씨 세심재 洗心齋

진북면 인곡리 903-1(진북정곡길 219)에는 김해김씨金海金氏 운곡부군雲谷府君을 향사하기 위해 6.25동난으로 잿더미가 된 글방을 1969년 후손들이 세심재洗心齋라는 이름으로 재건했다. 구글지도는 「위도35°07'32.4"N 경도128°26'17.2"E」를 표시 한다. 대문에는 경관재敬觀齋라 편액했고 본재에는 세심재洗心齋라 이름하고 4개의 기둥에는 주련을 걸었으며, 대청 위에는 세심재중수기洗心齋重修記와 상량문上樑文이 있고 원운原韻과 차운次韻 등이 걸려 있다. 洗心齋重修記 國師山出自艅航西而南 南而復東至于 國師拔乎華 而分爲三麓一 則東走爲義林智山 而止一則南走爲玉峯牛山 而止中則東走爲尼丘山 而止右夾爲禮谷玉溪牛山 左夾爲仁谷義谷知山中 藏一谷曰正谷天 我高祖雲谷府君所占 而藏修焉窃念 仁義禮智四德 皆申於正心 而發則修身齊家..

진북면 인곡 인동장씨 요산재 樂山齋

진북면 인곡리 658(의림로 255-12)에는 인동장씨仁同張氏 요산재樂山齋 장공張公을 향사하기 위해 1947년 후손들이 요산재樂山齋라는 이름으로 재실을 지은 곳이다. 구글지도는 「위도35°07'46.4"N 경도128°26'45.5"E」를 표시 한다. 대문에는 호인문好仁門이라 편액했고 본재本齋는 아석 김종대의 글씨로 요산재樂山齋라 이름하고 5개의 기둥과 3개의 방기둥에도 주련柱聯을 걸었다. 대청마루 방문 위에는 육대조고둔암부군행기六代祖考遯庵府君行記와 요산재상량문樂山齋上樑文, 요산재기樂山齋記를 비롯하여 요산공樂山公의 원운原韻 및 맏이 지구志九의 복차伏次 시詩, 후손 천상天相, 안릉 이현욱李鉉郁·이종호李鍾浩 등의 시운詩韻이 걸려 있다. 樂山齋記 鎭海之仁谷背山而臨海坐 而回東嵂然而聳于 後在尼邱山也 山列如而左右環抱..

진북면 인곡 인동장씨 서계정 西溪亭

2020.6.12. 진북면 인곡 인동장씨 서계정西溪亭 진북면 인곡리 648(의림로 263)에는 인동장씨仁同張氏 서계西溪 옥추공玉樞公을 향사하기 위해 1972년 후손들이 서계정西溪亭라는 이름으로 재실을 지은 곳이다. 구글지도는 「위도35°07'48.2"N 경도128°26'46.0"E」를 표시한다. 의림사義林寺를 가면 인곡리를 지나게 되는데 인곡리 길가 좌측에 서계정西溪亭이 위치한다. 대문 편액은 대청문待請門이고 본재의 편액은 서계정西溪亭이며 모원당慕遠堂과 망추헌望楸軒이 방의 이름이다. 4개의 기둥에는 주련 시를 달았고 대청의 문 위에는 기문과 운문 차운의 편액이 걸려 있다. 一區澗阿遺躅依然 古床琴書貽謨敢忘 晴月交輝想仰襟懷 敦倫譚經丕述前光 西溪亭記 夫祖先之有德美 而述以繼之仁也 有事蹟而補 以彰之孝也 仁爲萬善之..

진북면 인곡 김해김씨 모운재 慕雲齋

진북면 인곡리 741(인곡1길 13)에는 김해김씨 창련공昌鍊公을 향사하기 위해 1976년 후손들이 모운재慕雲齋라는 이름으로 재실을 지은 곳이다. 구글지도는 「위도35°07'40.8"N 경도128°26'43.0"E」를 표시한다. 대문에는 독경문篤敬門이라 편액했고 본재本齋에는 은초隱樵 정명수鄭命壽가 모운재慕雲齋라 편액한 글씨를 남겼다. 기둥에는 주련이 붙었고 대청의 문 위에는 모운재기慕雲齋記 및 주손胄孫 호균互均이 쓴 원운原韻과 후손 홍구洪球와 종생鍾生이 남긴 차운次韻도 있다. [해문-전문] 翼然軒楹于澗之東 날아갈 듯한 재실은 개울 동쪽에 있는데 敬慕聿修邊豆惟恭 경모하여 수리하고 제사를 공손히 지낸다네 誦詩讀禮課忠責孝 시경 외고 예기 읽으며 忠을 배우고 孝를 가르치네 追遠勿替虔守箕弓 먼 조상 추모하는 일 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