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201

지리산 둘레길 송문교~용유담을 걷다.

이번 11월 5일에 중학교 동창들과 지리산 둘레길 중 제4코스를 걸었다. 걷기를 좋아하는 A팀은 원기마을에서 용유담까지를 걸었고 몸이 불편한 두 친구는 송문교에서 용유담까지 약 4km를 걸었다. 문정교를 지나면서 처음 본 것은 엄천 안쪽에 위치한 와룡대(臥龍臺)라는 큰 바위이다. 와룡대로 출입하는 다리가 있었으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송문교를 지나 맞은편에서 보니 비석이 있어 찾아가보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남았다. 엄천강을 따라가는 이 둘레길은 아스팔트도로와 가끔 엄천강에 근접하여 가는 길들로 만들어 졌으나 길을 몰라 계속 아스팔트도로를 따라 걷기만 했다. 다행히 차량의 왕래가 많지 않아 둘이서 오순도순 걸을 수 있었다. 길을 걷다보니 이 길이 용유담과 마적도사라는 사람의 전설이 남은 ‘전설..

진전면 양촌리 변씨 삼강려

옛 국도2호를 따라 진주로 향하다보면 ‘양촌온천’이라 말하는 동산리가 나온다. 진전면 동산리에서 양촌마을로 곧장 가면 도로 옆에 잘 정돈된 ‘양촌리 변씨 삼강려(良村里 卞氏 三綱閭)’가 보인다. 이곳의 지번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촌리 235-1이다. 계단을 올라 삼강려각이 있는 곳으로 가다보면 삼강려에 대한 안내문이 금석문에 새겼다. 그내용은 아래와 같다. 『오원(吾元) 변연수(卞延壽 1538~1592)장군은 조선 중종33년(1538년)에 이곳에서 태어나 무과에 급제하고 훈련주부의 벼슬에 올랐으나 휴관으로 향리에서 쉬고 있을 때 임진왜란을 맞이하게 되자 아들 변립(卞岦)과 함께 “신하된 자 몸을 던질 때로다.” 이르고 즉각 격문을 내어 원근에서 의병을 모아 연해의 출몰 왜적을 격퇴하고 이순신 장군..

진전면 고사리 밀양 박준구 효행각

‘진전면 고사리 밀양 박준구 효행각’은 진전천이 굽이를 치는 굼바위에서 술인방 방향으로 약 190m 떨어진 진전면 고사리 산 57에 위치한다. 『감동으로 적신 효성』[마산 문화원, 1998]에 「고사리 효행각」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는 이 비각은 산의 경사면을 ㄷ자로 파서 자연석으로 축대를 하고 비각의 전면에는 돌로 담장을 쌓았고 중앙에 철재문을 달고 지붕돌을 얹었다. 담장 안에 세운 비는 사방에 주춧돌을 심고 사각으로 만든 돌기둥을 세운 후 지붕돌을 얹어 비각을 만들고 비각의 전면에 ‘孝行閣(효행각)이라 새겼다. 돌로 만든 효행각 안에는 평면의 비좌위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가첨석을 올렸다. 비의 전면에는 ’孝子密城朴公之碑(효자밀성박공지비)라 적었다. 朴準龜 孝行閣( 박준구 효행각)은 이 지방의 ..

진전면 여양리 골옥방 은진임씨 효열비

진전면 여양리 332번지에 위치하는 ‘진전면 여양리 은진임씨 효열비’는 여양리 들담마을에서 옥방교를 건너 골옥방마을로 약 450m를 가면 길 좌측 암괴를 보호축대처럼 이용하여 비를 세웠다. 암괴와 도로 사이의 폭이 좁아 도로와 거의 직각에 가깝게 축대를 쌓고 가파른 5개 계단을 만들었다. 비의 뒷면은 자연 암괴를 보호축대처럼 이용했고, 좌우는 다듬은 돌로 담장을 만들어 좁은 공간이지만 그 속에 비를 세웠다. 비의 크기는 소박하지만 비좌, 비신, 가첨석을 갖추었고 높이는 150cm, 폭 47cm, 두께가 19cm이다. 비의 전면에는 處士密城朴公準仁之配夫人恩津林氏孝烈碑(처사밀성박공준인지배부인은진임씨효열비)라 음각으로 새겼다. 골옥방에 살았던 박준인의 처 은진임씨의 높은 부덕과 남다른 효열을 기리기 위해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