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201

구산면 난포리 효자 김봉주 포효비 褒孝碑

구산면 난포리 342번지에는 남포리 버스정류장과 함께 500년 된 팽나무 노거수가 자리를 하고 있으며, 노거수의 바로 뒤편에 ‘남포리 김봉주 효자비’가 세워져 있다. 이곳은 봉화산이 바다와 이어지는 끝자락이라 ㄷ자 형태로 흙을 파고 돌로 석축을 한 다음 전면에 철문을 달고 그 안에 화강암으로 비대를 세우고 비신은 烏石(오석)으로 가로 길이가 긴 직사각형으로 했다.     비신의 전면에는 「勅命(칙명) 通政大夫(통정대부) 金鳳周陞從(김봉주승종) 二品嘉善大夫者(이품가선대부자) 光武九年十月八日(광무구년십월팔일 1905년) 大皇帝陛下 特命 加資時奉(대황제폐하 특명 가자시봉) 勅(칙) 淑夫人爲貞夫人(숙부인위정부인)」이라 새겼다. 비의 뒷면에는 완의문의 원문을 새겼다.      비 앞에는 한글로 완의문 내용을 번역..

진해구 남문동 개고개 입구 쌍효각 雙孝閣

창원시 남문동 산 1063-3번지에는 진해 남문동에서 웅신 고개[개고개]로 올라가는 길 왼편에 虎患(호환)을 당하여 생명이 위독하게 된 부친을 구한 아들 徐志淳(서지순 1734~1801), 며느리 경주 이씨의 효성을 기리는 정려가 있다. 이 정려에는 李載現(이재현)이 쓴 雙孝閣(쌍효각)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고 내부에는 “孝子戶曹參判徐志淳之閭(효자호조참판서지순지려), 孝婦貞夫人慶州李氏之閭(효부정부인경주이씨지려)”라 적은 편액이 정면에 나란히 걸려있다. 또한 벽 좌우에는 雙孝傳(쌍효전)과 三綱錄(삼강록)이 붙어 있다. 그리고 雙孝閣(쌍효각) 좌측에는 효자달성서공지비 및 효부정부인경주이씨지비라 새긴 碑座圓首(비좌원수) 형의 비석도 세워져 있다. 이 雙孝閣(쌍효각)에 얽힌 이야기의 내력은 다음과 같다. 『곰메에..

웅천 남양동 열녀 박형직 처 정씨지려

烈女 朴衡直 妻 鄭氏之閭(열녀 박형직 처 정씨지려)가 위치한 곳은 진해구 남양동 104-2번지이다. 朴衡直 妻 鄭氏之閭(박형직 처 정씨지려)는 웅동에서 웅천 방향으로 가는 장고개에 위치해 있는데 진해대로를 달리는 차량의 속도가 빠른 편이고 도로 가장자리에 주차를 할 수 없다. 그러나 딱 한곳 산으로 가는 시멘트 길이 약간 있어 이곳에 차량 주차가 가능하고 여기에서 20m 산길을 오르면 보인다. 진해대로(국도 2호)에 인접해 있는 곳이지만 위치를 정확히 모르면 찾기가 쉽지 않은 산기슭에 있다. 이 여각 아래 월남마을에는 밀양박씨제실(진해구 남양동 10-38)이 있다. 필자의 경우 무작정 기록에 있는 월남마을을 찾아가 박씨제실이 있는 곳으로 가니 마침 박씨 문중의 사람을 만나 비의 위치를 알게 되었다.   ..

창원시 산호공원에 자리한 김형윤 불망비

창원시 산호동 532-4번지에 자리한 산호공원 초입에는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산호공원 시의거리’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詩碑(시비)들이 즐비하다. 차량으로 공원의 꼭대기까지 오르면 일제강점기에 바른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金亨潤 不忘碑(김형윤 불망비)”를 만나게 된다.이 비는 사각으로 깍은 낮은 석재를 방형으로 세워 울타리를 만들고 3개의 계단형태의 단을 쌓고 그 위에 비단을 만든 다음 그 위에 비대를 놓고 碑座圓首(비좌원수)형의 비신을 세웠다. 특이한 것은 울타리 안에 눈향나무를 심어 일 년 동안 푸름을 더하고 향을 피우듯이 향내를 내게 했다는 점이다. 비신의 전면에는 “金公亨潤不忘碑(김공형윤불망비)”라 새겼고, 측면에는 서기 1974년 5월 18일, 김형윤 선생 기념 사업회라 적었으며, 명예회장 金..

창원시 회원동 숙부인 달성 서씨 시혜 불망비

‘淑夫人達城徐氏施惠不忘碑(숙부인 달성 서씨 시혜불망비)’는 일명 ‘徐氏施惠不忘碑(서씨 시혜 불망비)’라고도 한다. 이 서씨 시혜 불망비가 위치한 곳은 창원시 회원동 145-1번지로 ‘무학여자중·고등학교’ 교정에 있다. 원래는 회원동의 도로변에 있었는데 도로 확장 공사로 인한 훼손의 위험이 있었기에 현재의 위치인 회원동 무학여자중·고등학교 교정으로 이건하여 보호하고 있다. 교정을 들어서면 좌측의 주차장이 있는 곳으로 운동장 가장자리를 따라 가다보면 학교와 개인주택의 경계지점에 홀로 서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비가 왜 여기 있는지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모른다.    이 서씨 시혜불망비는 대석은 없고 비의 머리 부분과 몸체 부분이 하나로 되어 있는, 碑座 荷葉(비좌 하엽)의 형태를 띄고 있다. 전명 중..

동읍 봉산리 구우서 효자비

2016.11.19. 봉산리 구우서 효자비 동읍 봉산리 산 95는 해발 55m이며 「위도 35°16′46.8″N 경도 128°41′33.7″E」이다. 이곳에 세운 ‘鳳山里 具禹書 孝子碑(봉산리 구우서 효자비)’는 松亭里(송정리)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이 비를 찾으려면 창원에서 진영방향의 의창대로(국도 14호)를 따라 용잠리에 가면 동읍 용잠성당에서 창원구씨 세거비가 있는 방향으로 50m 전방에 신호등 없이 좌회전 할 수 있는 옛 길이 나온다. 좌회전 후 50m을 가면 우측 길가에 향나무가 있고 그 아래에 ‘故孝子參奉綾州具禹書之閭(고효자참봉능주구우서지려)’라 새긴 봉산리 구우서 효자비가 있다.   동읍 봉산리 불피고개 남서쪽에 위치한 이곳의 평탄한 지면에 박석으로 도로보다 조금 높인 후 시..

창원시 소답동 퇴기백영월영세불망비

退妓白映月永世不忘碑(퇴기백영월영세불망비)는 의창구 소답동 927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북면고개 남쪽 기슭의 구룡사 입구에 있다. 비각의 우측에는 제법 큰 팽나무가 서있고 뒤편에는 구룡사의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위에는 아까시나무가 넘어져 있어 철거가 필요하다. 비각은 좌우 뒷면을 깎아 돌담을 쌓고 앞쪽은 적벽돌로 담장을 쌓았으며 화강암을 네모반듯하게 다듬어 기둥으로 세우고 철재문을 달았다. 이 비는 백영월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북동 주민들이 건립한 것으로 옛 비는 훼손되어 백영월 묘터 근방에 묻고 현재의 비는 북동 주민들이 1977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閭閣(려각)을 대신해 비신(碑身)의 네 모서리 부분에 돌기둥를 세우고 팔작지붕 형태의 지붕돌을 얹은 형식의 비각(碑閣)을 갖추었다. 석재비각 안에..

진해구 제덕동 탁유상 대로개창비

2015년 4월 26일 진해구 제덕동에 위치한 제덕동 팽나무 노거수와 제덕진성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이 비는「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에서는‘卓有詳碑(탁유상비)’라 소개를 하고,「국립문화재연구소-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에서는 ‘大路開創碑(대로개창비)’라 소개를 하고 있다. 또한 문화유적의 이름만 소개하고 있는「문화유적총람」에도 ‘大路開創碑(대로개창비)’라 소개를 하고 있다.      碑座荷葉(비좌하엽) 양식의 卓有詳 大路開創碑(탁유상 대로개창비)는 제덕동 586번지에 있었지만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현 위치인 진해구 제덕동 915번지로 이전을 하여 세웠다. 비문은 풍파에 시달려 잘 알아보기 힘들다. 이 비의 전체 높이는 1.13m, 비신의 높이는 0.76m이다. 비의 뒷면에는 化主 徐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