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201

내서읍 중리 본동의 매국 냄새 풍기는 완천각

中里 玩川閣(중리 완천각)이 위치한 창원시 내서읍 중리 본동 입구인 내서읍 중리 1480-2번지는 함안으로 넘어가는 국도 1004호(함마대로)변에 있으며, 농수산물시장교차로를 마주하고 있다. 비각의 정면에는 玩川閣(완천각)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내부에는 내력을 알려주는 ‘완천각기’라는 記文(기문)이 걸려 있으며, 비각 안에는 ‘馬山府內西面長崔將翰功德不忘碑(마산부내서면장최장한공덕불망비)’가 세워져 있다.    이 완천각은 당시 內西面(내서면) 출신이면서 초대면장을 지낸 崔將翰(최장한 1866~1951)의 공덕비를 보호하는 비각이다. 그는 조선이 망하여 한일합방이 되던 해 內西面長(내서면장)으로 부임하여 10년간 재직했다. 그가 재직할 당시에는 중리 일대에 수리시설이 없어 농토가 황폐한 채 버려져 있었다..

진동면 진해향교(마산향교) 묵암처사 이규신 비

현 마산향교라 이름 하는 진해향교는 1414년(태종 14) 진해현이 설치되면서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방화로 소실되었다. 이후 인조 때 재건하였으나 1920년 일제의 강압으로 철폐되어 창원향교에 통합되었다, 다시 1993년에 창원군향교로 재건되었다가 1995년 마산향교로 개칭하였다. 그러나 전통을 따르자면 진해향교라 칭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우리지역의 지명이나 역사가 뒤틀린 것은 일제치하의 영향이 크며 특히 일제가 세운 학교에서 일제의 교육을 받고 의심 없이 사용하는 교육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의 얼을 세우려면 우리가 가진 고유의 명칭을 사용하고 일제에 의해 왜곡된 것들을 바로 잡으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진동면 교동리 549-1번지 진해향교 앞에는 3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景默契(경묵계..

진북면 인곡리 아랫담 여남처사 장순후 기적비

<2016.11.01. 인곡리 아랫담 여남 장순후 기적비> 의림로변에 위치한 ‘艅南張醇厚紀蹟碑(여남 장순후 기적비)’는 인곡리 느티나무 보호수에서 의림사 방향으로 65m 떨어진 인곡리 아랫담마을 입구인 진북면 인곡리 796번지에 세워져 있다. 艅南 張醇厚(여남 장순후)의 행적을 기리는 이..

진북면 인곡리 정곡마을 거석 풍영대

인곡리에서 가장 알려진 곳이 있다면 의림사 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의림사 방향의 길은 사람들의 왕래가 많이 있으나, 같은 인곡리 이지만 정곡마을은 특별히 볼일이 없으면 찾을 일이 없다. 그러다보니 仁谷里 風詠坮(인곡리 풍영대)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인곡리 정곡마을 입구에 있는 노거수 느티나무를 보고 들판으로 눈을 돌리는 순간 커다란 바위가 들판에 서 있어 고인돌로 착각할 정도였다. 차량을 길가에 주차하고 거석이 놓인 자리로 접근해보니 어떻게 이 바위가 이곳에 있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인근의 암석들과 같은 종류라는 것은 알았다. 풍영대는 계단식 논으로 되어 있는 곳의 논두렁에 잡석을 깔고 그 위에 올려진 모습이다. 자연 거석의 서쪽 면에 ‘風詠坮 茶山處士(풍영대 다산처사)’라 새기고 다른 곳에는..

진동면 교동리 진양강씨 부인 효청각 시혜비

창원시 진동면 교동리 772번지에 위치한 效淸閣(효청각)은 진양 姜三之(강삼지) 부인의 은덕을 입은 진동면민들이 세운 施惠碑(시혜비)이다. 효청각은 진동면 입구에 위치한 첫째 육교 아래에 있어 차량을 타고 갈 때는 보지 못하고 지나가기 쉽다.    산기슭의 모퉁이 부분에 위치한 효청각은 중앙에 貞夫人晋陽姜氏施惠碑(정부인진양강씨시혜비)를 세우고 좌우 뒷부분은 방형으로 흙을 파내고 안쪽에 돌담을 쌓았다. 비석은 비신(碑身)과 비개(碑蓋)를 갖춘 형태이며 비신(碑身)의 네 모서리 부분에 석주를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형식의 비각(碑閣)이 갖추어져 있다. 비각 입구는 돌담장을 쌓고 출입구는 판석을 좌우에 세우고 지붕돌을 얻었으며 지붕돌 아래 돌현판을 달고 效淸閣(효청각)이라 새겼다. 비석이 거의 훼손되어 글씨를 ..

창원시 동읍 용강리 김소남 여사 창선비

의창구 동읍 용강리 160-2번지는 현재 감나무 농장으로 되어 있으나 길에서 보면 ‘烈女金寧金小南女史彰善碑(열녀김녕김소남여사창선비)’가 서있는 것이 보인다. 이곳은 용암마을회관과 40m에 위치하고, 회관 앞에는 관리번호 12-7-2호로 지정된 창원시 보호수인 ‘용강리 팽나무’가 위치한 곳이다. 또한 인접 하여 나주임씨 3대효자비가 세워져 있다.    김소남 여사 창선비는 1976년 10월에 세운 것으로 曉齋 黃基完(효재 황기완)이 글을 썼다. 비석의 전체 높이는 180cm, 비신 높이 128cm, 너비 45cm이며 가첨석과 비대를 갖춘 형식이다. 비석 뒷면에 새긴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다.『일찍이 김소남 여사의 열녀행적을 들은바 있었는데 어느 날 方致順 女史(방치순 여사)가 찾아와 ‘孔夫子聖蹟圖五倫行實重..

창원시 동읍 용강리 오이원효자비와 정려각

용강고개에서 구룡산(九龍山;432.5m) 방향을 보면 구룡산[옛 태을산(太乙山)] 자락 아래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그 아래쪽에 옹기종기 용강리 양달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양달마을 입구인 의창구 동읍 용강리 482번지에는 ‘吳以源孝子碑와 旌閭閣(오이원효자비와 정려각)’이 있다. 이곳은 해발 60m이며 「위도 35°16′18″N 경도 128°38′07″E」이다.처음 오씨효자비는 화강암으로 된 것이었으나 그 옆에 문중에서 새로 세운 비석이 있으며 그 뒤로 정려각이 있다. 비의 정면에는 ‘孝子贈童蒙敎官吳以源之閭 上之三十二年十二月命旌(효자증동몽교관오이원지려 상지삼십이년십이월명려)’로 음각되어 있다.비석의 내용은 효자 오이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부친 오태성이 나무를 하러갔다가 범에게 물려 상처를 입었다. 온..